[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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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오는 7월부터 모든 정비사업에 대해 시공자 선정시기를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한다. 지난 2010년 공공관리제가 도입된 이후 약 13년 만에 원상복귀하게 되는 것이다. 현 공공지원제도의 원형인 공공관리제도를 만든 장본인이 오세훈 시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자해지를 하게 된 셈이다. 그동안 시공자 선정시기는 부동산 시장 상황과 정책에 따라 규제로 이용됐다. 부동산 활황기에는 재건축·재개발이 주택가격 상승의 원흉이라 판단해 시공자 선정시기를 늦췄다. 반면 주택시장이 침체되면 정비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선정시기를 앞당기기도 했다. 시공자 선정시기의 변천사가 주택시장 상황의 변천사이기도 한 셈이다.

정비사업 진행단계별 현황(서울시, 2022.9.30. 기준) [표=홍영주 기자]
정비사업 진행단계별 현황(서울시, 2022.9.30. 기준) [표=홍영주 기자]

지난 2003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시행되기 전 재개발과 재건축은 각각 도시재개발법과 주택건설촉진법에 따라 추진됐다. 당시 재개발·재건축은 법령과 제도의 미비 등으로 소위 ‘복마전’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로 비리의 온상으로 인식됐다. 특히 조합과 시공자가 담합해 비리를 저지른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도시정비법 제정 당시에는 시공자 선정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방향으로 설정했다. 재개발과 재건축 모두 사업시행인가 이후에 시공자를 선정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다. 시공자로부터 지원 받아야 하는 전문성과 자금은 정비사업전문관리자 제도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조합설립동의서 징구나 인허가 신청, 사업성 검토 등의 업무를 정비업체가 대행함으로써 사업초기 단계에 시공자와의 접촉을 차단한다는 취지에서다.

정비사업 진행단계별 현황(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 2023.2.6. 기준) [표=홍영주 기자]
정비사업 진행단계별 현황(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 2023.2.6. 기준) [표=홍영주 기자]

도시정비법 시행 이후 전국적으로 주택가격이 상승하자 정부는 재건축에 각종 규제를 시행한다.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의 가격이 오르면 인근 아파트 가격도 동반 상승하고, 다시 일반분양가도 높아지는 주택가격 상승 순환 구조가 일어난다고 진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재건축 조합원 지위양도 금지를 비롯해 임대주택 의무공급, 소형평형 의무비율 등을 도입한다. 이 과정에서 시공자 관련 규정도 개정되는데, 재건축만 사업시행인가 이후로 선정토록 했다.

서울시 재개발^재건축 사업별 시공자 선정시기 비교 [표=홍영주 기자]
서울시 재개발^재건축 사업별 시공자 선정시기 비교 [표=홍영주 기자]

재개발에 대한 시공자 선정시기가 삭제되면서 일선 현장에서는 논란이 발생했다. 법적 명시규정이 없는 만큼 사업시행인가 전 조합 단계는 물론 추진위원회에서도 시공자 선정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왔다. 정부에서도 재개발 시공자 선정시기와 관련해 명확한 해석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전국 재개발구역이 시공자를 선정하는 광풍이 불었다. 정부도 암묵적으로 시공자 선정을 허용하면서 추진위원회의 시공자 선정이 이어졌다. 재개발의 시공자 선정 러시는 선정시기를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규정한 개정 도시정비법이 시행되는 2006년 8월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국제금융위기와 대규모 미분양 사태 등이 겹치면서 정비사업도 타격을 받게 된다. 시공자로 선정되기 위해 건설사가 조합에 적극적인 구애를 하던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미분양을 우려한 건설사들이 정비사업에 관심을 두지 않자 조합이 건설사를 찾아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도 시공자가 없이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해 재건축의 시공자 선정시기를 당겼다. 2009년 2월 개정된 도시정비법에는 재건축의 시공자 선정시기를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명시했다.

서울시의 경우 2010년 공공관리제도를 도입하면서 시공자 선정시기가 다시 미뤄지게 된다. 조합이 사업시행계획서에 반영된 설계도서를 통해 예가를 산정한 후 내역입찰을 진행토록 한 것이다. 공공지원제도로 명칭이 변경된 현재까지도 시공자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사업시행인가가 선행돼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해 말 신속통합기획을 적용한 구역은 조합설립인가 이후에 시공자를 선정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개정안이 시의회를 통과한데 이어 공포됐다.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치는 만큼 7월 1일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어 오 시장은 지난 2일 신통기획 적용구역은 물론 일반 정비구역도 시공자 선정시기를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환원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공공관리제도 도입 후 13년 만에 서울지역의 정비사업도 조합을 설립하면 곧바로 시공자 선정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공공지원 연도별 융자금 지원현황 (2017년 이후, 단위:건/백만원) [표=홍영주 기자]
공공지원 연도별 융자금 지원현황 (2017년 이후, 단위:건/백만원) [표=홍영주 기자]

한편 이번 발표로 시공자 선정 조기화를 적용 받을 사업장은 최소 100곳 이상이 될 전망이다. 서울시의회 주택공간위원회의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사업시행인가를 받지 못한 조합은 총 96곳이며, 추진위원회는 16곳인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최소 112곳이 조합 단계에서 시공자 선정이 가능할 것이란 예측이다. 사업 유형별로는 주택정비형 재개발이 32곳(조합), 재건축이 80곳(추진위16곳·조합64곳)이다.

다만 서울시의 정비사업 정보몽땅 통계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정보몽땅에 따르면 주택정비형 재개발의 경우 추진위 단계가 8곳, 조합 단계가 37곳이며, 재건축은 추진위 단계 23곳, 조합 단계 75곳이다. 따라서 추진위에서 조합설립인가 단계로 시공자 조기 선정이 가능한 사업장은 143곳이 될 것으로 분석됐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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