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그래픽=홍영주 기자]

6월 4일부터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에 상시 전자투표 제도가 본격 도입됐다. 그동안은 재난 발생 등 제한된 상황에서만 전자투표가 가능했지만, 일반적인 총회에도 전자투표를 시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울시 등 지자체도 전자투표 시행에 맞춰 일부 비용을 지원하거나, 행정적 지원에 나서고 있다.

다만 전자투표 상시 제도가 첫 도입되는 만큼 우려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자투표 업체의 정비사업전문관리업 등록 여부다.

일각에서는 전자투표가 서면결의서와 동일한 효과를 내는 만큼 전자투표업체가 정비업에 등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법령이 단기간 내에 재개정이 이뤄지면서 직접 참석 인정 여부에 대해 오해하는 사례도 있다.

또 조합원 등 다수의 개인정보를 다루는 반면 관리·감독과 관련한 법령 규정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자투표와 관련한 주요 쟁점을 짚어봤다.

 

전자투표 업체, 정비업 등록 필요하다?… 법률 전문가 “단순 전자투표시스템 제공 업무는 등록 필요 없어”

최근 정비사업 전자투표와 관련한 최대 쟁점은 전자투표업체의 정비업 등록 필요 여부다. 실제로 전자투표업체가 총회 관련 업무를 진행했다는 이유로 법원이 도시정비법 위반을 선고한 사례가 있다. 지난 4월 서울동부지방법원은 A전자투표업체와 대표이사 등에 대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것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A업체는 총회대행업과 전자 서면결의서 징구 시스템 지원업 등을 등록한 법인이다. 지난 2020년 7월 서울의 B재개발조합으로부터 △서면결의서 및 현장 투표용지 자동집계시스템 지원 및 개표지원 △인터넷 전자투표 시스템 및 총회 홍보에 필요한 시스템의 운영 및 관리 △총회 홍보안내 TM 직원 제공 △조합원 대상 총회(대의원회) 참석 홍보, 인터넷 또는 서면을 통한 사전의결권 행사 홍보·지원 등의 업무를 위탁 받아 수행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정비사업 시행을 위해 필요한 조합설립의 동의 및 정비사업의 동의에 관한 업무의 대행 등을 위탁받으려는 자는 정비사업전문관리업 등록을 해야 한다”며 “도시정비법 위반으로 피고인들을 각 벌금 200만원에 처한다”고 판결했다. 다만 해당 사건은 원고인 A전자투표업체 등이 불복해 항고심이 진행 중에 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전자투표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정비업 등록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사업시행계획이나 관리처분계획 등 정비사업 주요 업무와 관련한 총회의 투표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정비업 등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전자투표시스템을 지원하는 업무로는 정비업 등록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비사업과 관련한 중요 업무를 대행하는 것이 아닌 투표 지원만으로는 처벌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앞서 도시정비법 위반으로 처벌 받은 사례의 경우 단순 투표시스템을 공급하는 업무가 아닌 총회와 관련한 주요 업무를 진행한 것이 처벌 근거가 됐다는 해석이다.

법무법인 현의 김래현 변호사는 “도시정비법에는 전자투표 업무를 정비업체의 고유 업무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며 “조합이 서면결의서 징구 등의 업무를 진행하는 용역직원을 직접 채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자투표도 정비업 등록 없이 업무를 지원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조운의 박일규 대표변호사는 “최근 법원에서는 조합이나 정비업체의 단순 업무를 지원했더라도 도시정비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며 “전자투표 시스템을 대여하거나, 지원하는 업무만으로 정비업 등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법령을 과대 해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부 업체의 처벌 사례는 총회나 정비사업의 주요 업무를 대행했기 때문이지 전자투표 자체가 처벌 대상이 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상시 전자투표 직접 참석, 인정→불인정… 잦은 법령 개정, 논란만 키워

전자투표에 대한 총회 직접 참석 여부를 둘러싼 혼란도 이어지고 있다. 전자투표 상시 제도를 도입한 법령이 시행도 되기 전에 재개정이 이뤄지면서 직참 인정 여부에 대한 오해가 발생한 탓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법령으로는 총회에 참석하지 않고, 전자투표만 진행한 경우에는 직접 참석을 인정받지 못한다.

전자투표는 지난 2019년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함에 따라 도입된 제도다. 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총회가 필수 요건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다수가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일부 조합에서는 정부의 지침을 무시한 채 총회를 강행해 벌금 등을 받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정비사업에 전자투표 도입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된다. 이어 2021년 8월 도시정비법을 개정해 전자적 방법을 통한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게 된다. 다만 당시에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른 재난의 발생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유가 발생해 시장·군수가 인정하는 경우로 한정했다. 다만 특정 상황에서만 전자투표가 가능했던 만큼 직접 출석으로 인정하는 규정이 마련됐다.

이후 업계에서는 일상적인 총회에서도 전자투표를 이용하면서 새로운 논란이 발생했다. 재난이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자투표가 유효한지 여부와 함께 직접 참석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두고 이견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도시정비법 개정에 착수하게 된다. 지난해 12월 개정된 도시정비법에는 일상적인 상황에서 전자투표가 가능한 것은 물론 직접 참석까지 인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재난 발생 등의 특수 상황이 아니더라도 조합원이 전자투표를 진행하면 직접 출석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접 참석 규정은 해당 규정이 시행도 되기 전에 재개정을 맞이하게 된다. 지난 5월 도시정비법이 개정되면서 정족수에만 포함될 뿐 직접 참석은 인정하지 않게 변경된 것이다. 

문제는 전자투표 상시 제도가 시행되기 직전에 법령이 다시 개정되면서 혼선을 빚게 됐다는 점이다. 당초 법령에서는 전자투표 시 직참을 인정한 만큼 전자투표 업체를 중심으로 홍보가 이뤄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전자 투표 시 직참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정보 유출 우려·관련 자료 관리 소홀 등 감독 규정 미흡

상시 전자투표 제도가 본격 시행에 들어갔지만, 개인정보나 관련 자료 등에 대한 관리·감독 부실에 대한 주장도 제기된다. 전자투표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제공이 불가피한데 반해 도시정비법에는 이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대형 통신사의 해킹으로 인해 900만명이 넘는 유심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비업계에도 전자투표와 관련한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자투표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번호나 주소, 전화번호 등 조합원의 민감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자투표 업체에서는 블록체인이나 암호화 기술 등을 적용해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의 보안을 뚫고 해킹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안심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한 전자투표 업체에서 개인정보 유출이 의심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해당 전자투표 업체를 퇴사한 직원이 관리자 모드에 접속해 일부 조합원의 개인정보와 투표 결과 등을 유출했다는 것이다. 해킹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개인정보가 유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전자투표 업체가 개인정보를 철저하게 보호하기 위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나 지자체, 공공단체가 전자투표 업체를 감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 처벌 규정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비업체 관계자는 “현행 도시정비법에는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한 규정이 없을 뿐 아니라 정부나 지자체가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며 “사전 집계결과 미공개와 관련 자료 보관 등을 법령으로 의무화하고 있지만, 처벌 규정은 마련되지 않아 실효성에도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위클리한국주택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