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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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전체 재개발이 예상되면서 선제적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 신도시에 버금가는 곳으로 만들겠다. 공원과 커뮤니티공간을 보장하면서 건물 높이를 올리겠다.”

약 2년 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 말이다. 박 시장은 2018년 7월 10일 ‘리콴유 세계 도시상’을 받기 위해 방문한 싱가포르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여의도 통개발 계획’을 언급했다. 여의도를 국제금융 중심지로 발전시키기 위해 종합 마스터플랜인 ‘여의도 일대 재구조화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수상의 기쁨이 컸던 탓일까. 이날 박 시장의 발언은 평소 보존을 중시하고 개발을 지양하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의도아파트지구 내 아파트 재건축 추진현황 [그래픽=홍영주 기자]
여의도아파트지구 내 아파트 재건축 추진현황 [그래픽=홍영주 기자]
여의도 아파트지구 지구단위계획 수립현황 [그래픽=홍영주 기자]
여의도 아파트지구 지구단위계획 수립현황 [그래픽=홍영주 기자]

개발 호재를 만난 여의도 아파트가격은 바로 들썩였다. 당시 영등포구 아파트가격 상승률이 서울에서 가장 높았고, 여의도 재건축 대상 단지들은 1주일 만에 호가가 1억~2억원씩 올랐다.

부동산시장이 과열되면서 급기야 정부는 박 시장의 ‘통개발 계획 발표’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박 시장은 약 한 달 만인 2018년 8월 26일 통개발 계획을 전면 보류시켰고, 혼란만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때 재건축 기대감이 부풀었던 여의도 노후 아파트 단지들의 현재 모습은 어떨까. 여의도에는 국회의사당과 KBS본관, 증권거래소 등이 위치해 있다. 고층빌딩이 밀집해있고, 정치·미디어·금융의 중심지로 평가 받는 ‘세련된 도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반면 주거공간은 열악한 게 현실이다. 2018년 통개발 계획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여의도 일대 재건축사업은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여의도 지구단위계획이 확정돼야 재건축사업 추진이 가능한데, 시에서 발표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여의도 일대 노후 아파트 단지 대부분은 1970년대에 지어졌다. 여의나루역 한강공원을 주변으로 시범·삼부·한양·장미·대교·화랑·삼익아파트가 모여 있으며, 여의도역 근처로 내려가면 광장·미성아파트가 샛강생태공원 주변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중 나이순으로는 올해 준공 50년차를 맞이한 시범아파트가 가장 연장자다.

이곳 주민들은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재건축사업 재개가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주차공간이 부족하다는 등 실생활에 대한 불편함과 함께 외벽에 금이 가면서 안전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고충을 털어놓는다.

실제로 출근시간이 한참 지난 4일 오후 2시. 단지 내 곳곳은 주차 공간이 부족해 2중·3중으로 겹겹이 주차가 돼있었다. 주민들은 퇴근 시간이면 비어있는 주차공간을 찾아나서는 차량이 줄지어 길게 늘어서면서 그야말로 주차전쟁을 방불케 한다고 하소연한다.

가장 큰 문제는 아파트 노후화로 인한 안전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다는 점이다. 건물 외벽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지고, 금이 가있는 곳들이 눈에 띈다. 인근 다른 아파트 단지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지자체와 정치권에 재건축에 대한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다고 토로한다. ‘집값 상승이 우려되기 때문에 당장 지구단위계획 결정 및 발표가 어렵다’는 것이다.

시범아파트 주민들은 지난 2월 6일 서울시의회에 여의도 일대 지구단위계획 결정을 조속히 이행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접수했다. 이후 3월 6일 해당 청원서가 채택됐고, 시는 답변 시한 90일이 지난 6월 6일 처리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답변서 내용은 재건축사업 추진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감 대신 실망감만 가득 채워 놨다. 시는 답변서에 안전성 확보의 경우 안전점검 및 유지관리 등 공동주택 전반에 대한 안전관리 의무는 입주자대표회의 및 관리주체에 있다고 강조했다. 또 장기수선충당금을 활용해 전기·소화·승강기 등의 시설을 교체하거나 보수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렸다. 노후화된 온수탱크 및 고압전기실 누수로 화재·감전이 우려된다면 시설물을 교체하거나 성능개선을 위한 보수·보강 등의 조치를 시행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답변했다. 즉, 안전의무는 관리주체에 있고 주민 스스로 보수·보강에 나서야한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은 셈이다.

지구단위계획을 조속히 결정해달라는 청원에 대한 답변 역시 형식적인 절차 지키기에만 급급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답변서 내용은 집값 상승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추진하겠다는 게 골자다. 그런데 시는 이미 지난해 12월 지구단위계획수립을 위한 용역을 마쳤다. 약 반년 동안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재건축사업 추진을 기약 없이 ‘불허’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민들은 지구단위계획이 결정·발표될 경우 부동산시장이 과열될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지은 지 50년 된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불안감도 헤아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되기 전부터 서울시장의 섣부른 개발계획 발표로 인해 집값만 들썩였고, 재건축은 무기한 보류되면서 애꿎은 주민들만 안전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혁기 기자 lee@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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