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의뢰인은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토지를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개발업자는 인근 토지를 매입하여 개발사업을 한다며 “곧 토지 매입이 완료되고 개발행위허가를 받을 수 있다. 사업승인을 받지 못하면 땅이 필요 없으니 그때는 계약을 해제하는 것으로 하자”고 의뢰인을 설득하였다.


계약금을 매매대금의 10%로 하고, 잔금과 소유권이전등기는 동시에 이행하되 그 시기를 ‘사업승인이 완료될 때’로 약정하였다. 의뢰인은 계약금을 받고 토지사용승낙서에 날인을 해 주었다. 이후 개발업자는 몇 번 사업승인을 신청하였다가 반려되었고 현재는 사무실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8년이 지났지만 그 지역이 개발된다는 구체적인 소문도 없다.


다른 사례. 사업을 하던 지인에게 사업자금을 빌려주었다. 사업에 실패한 지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돈을 갚겠다. 3개월 후에 납품을 한 거래처에 미수대금을 받을 것이 있는데, 이 돈을 받으면 절반을 갚고 나머지 절반은 사업 재기시에 갚겠다”는 내용으로 변제각서를 작성하여 의뢰인에게 교부하였다. 3년이 지난 현재까지 지인은 미수대금을 받지도 못하고 사업 재기에 성공하지 못하였다면서 한 푼도 절반도 갚지 않고 있다. 의뢰인은 언제까지 기다려 주어야 하는지 답답하다고 한다.


내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실관계를 법률행위의 조건이나 기한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승인이 완료될 때’, ‘거래처에서 미수금을 받을 때’, ‘사업에 재기할 때’ 등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 상대방이 약속을 이행하기로 한다. 이런 계약 때문에 발생하는 분쟁이 많다. 거래처로부터 미수금을 받을 때, 사업에 재기할 때 등 사실이 발생할 때까지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가. 그렇게 해석할 수는 없다.


채무의 변제에 관하여 일정한 사실이 부관으로 붙여진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실이 발생한 때뿐만 아니라 사실의 발생이 불가능하게 된 때에도 이행기한은 도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사실의 실현이 주로 채무를 변제하는 사람의 성의나 노력에 따라 좌우되고 채권자가 사실의 실현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경우에는 사실의 발생이 불가능한 것으로 확정되지는 않았더라도 합리적인 기간 내에 사실이 발생하지 않는 때에도 채무의 이행기한은 도래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제는 사업승인이 불가능하고 미수채권 회수가 불가능하고 사업에 재기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모두 기한이 도래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식의 계약은 주의하자. 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데도 상대방의 눈치만 보고 기다려야 하는 일이 생긴다. “늦어도 몇 년 몇 월 며칠까지는 그 기한이 도래한 것으로 본다”는 규정만이라도 넣어 두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한국주택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