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한국주택경제신문 편집국]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도 ‘구관이 명관’일까. 최근 공사비 갈등으로 시공자 해지를 추진했던 일선 현장들이 재협상으로 선회하고 있다. 

새로운 시공자를 선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다, 공사비 인하 효과도 불확실하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반영된 것이다. 

건설사들도 계약해지를 당할 경우 손실이 불가피한데다,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경우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한 만큼 공사비를 낮춰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성남 은행주공 아파트 [사진=성남시 제공]
성남 은행주공 아파트 [사진=성남시 제공]

성남 은행주공아파트는 지난 22일 정기총회에서 시공자 계약해지 관련 안건을 상정한 결과 조합원 과반수가 해지에 찬성하지 않아 부결됐다. 앞서 은행주공은 시공자인 GS건설·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과 재건축 공사비 협상 과정에서 갈등을 겪어왔다. 시공사업단이 2019년 당시 3.3㎡당 445만원이었던 공사비를 672만원까지 인상을 요구했고, 조합은 과도한 공사비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시공자 해지 여부에 대해 조합원의 의견을 물은 것이다.

북아현2구역 조감도 [사진=정보몽땅]
북아현2구역 조감도 [사진=정보몽땅]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2구역도 재개발 공사비 문제로 시공자 해지를 추진했지만, 최근 재협상키로 결론을 내렸다. 시공자인 삼성물산과 DL이앤씨가 조합원 특화품목을 반영한 공사비로 859만원(일반마감 749만원)을 요구하자 조합이 시공자 해지라는 강력한 대응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지난 21일 공동사업단이 3.3㎡당 748만원의 공사비를 수용하는 공문을 보내면서 재협상을 진행키로 했다.

홍제3구역 조감도 [사진=정보몽땅]
홍제3구역 조감도 [사진=정보몽땅]

홍제3구역 재건축도 시공자 해지 총회를 코앞에 두고 극적으로 타결이 이뤄졌다. 조합은 시공자인 현대건설이 3.3㎡당 900만원에 육박하는 공사비를 제안하자, 총회에 시공자 선정 취소 안건을 상정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총회를 불과 며칠 앞두고 현대건설이 700만원 초중반대의 공사비로 협상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공문을 보내면서 갈등이 일단락됐다.

경기 성남시 산성구역 [사진=성남시 제공]
경기 성남시 산성구역 [사진=성남시 제공]

올 상반기 대의원회에서 시공자 해지를 의결까지 진행했던 성남 산성구역도 기존 시공자와의 재협상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 5월 조합은 시공자인 대우건설·GS건설·SK에코플랜트와의 공사비 협의가 이뤄지지 않자 대의원회를 열어 시공자 계약을 해지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공자 선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시공단과의 결별을 포기하고, 재협상을 진행하기로 이사회 의결을 받았다.

업계에서는 계약해지 대신 재협상으로 선회하는 이유로 조합과 시공자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조합 입장에서는 시공자 해지를 하더라도 새로운 시공자를 선정하기까지 수개월의 시간 소요가 불가피하다. 이주·철거 등 사업기간이 늘어나면 사업비나 금융비용 증가로 인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새로운 시공자가 기존 시공자보다 낮은 공사비를 제시할 것이란 보장도 없다. 시공자 선정 자체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자칫 사업기간은 물론 사업비와 공사비가 되레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설사들도 무작정 결별을 택하기보다는 공사비 인상분을 조정해 협상하는 방향으로 제안하고 있다. 시공계약이 해지될 경우 그동안 사용된 홍보비용 등의 손실이 불가피한데다, 자칫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경우 향후 수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사비 증액 산정도 사실상 기존 계약서를 근거로 산출할 경우 조합이 유리하다는 점도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과도한 공사비 증액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적당한 수준 양보하는 자세로 조합원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의 엄정진 사무국장은 “러·우 전쟁 등의 여파로 공사 원자재가격이 급등하면서 조합과 시공자간의 갈등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시공자 해지가 이뤄질 경우 법적 분쟁 등으로 조합과 시공자가 모두 피해를 보는 만큼 적정 수준의 공사비로 협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서로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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