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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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신탁(대표이사 권준명)이 체결한 사업대행형 신탁계약서가 ‘불공정’ 논란에 휩싸였다. 계약서에 무궁화신탁은 조합의 계약해지에 따른 손해배상 규정을 명시해놓은 반면 자사의 귀책사유로 사업이 중단됐을 경우 등에 대한 배상 관련 내용을 배제해 놨다. 계약해지, 사업 중단 등 어떠한 방식으로 흘러가더라도 결과적으로 무궁화신탁만큼은 손해 볼 수 없는 ‘독소조항’이 곳곳에 명시돼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대표적인 사안은 계약해지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계약서상 합의를 전제로 두고 있지만 무궁화신탁이 응하지 않으면 조합으로서는 높은 수수료 부담을 떠안은 채 사업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무궁화신탁이 이화연립 소규모재건축조합과 체결한 사업대행형 신탁계약서에 따르면 사업대행자 지정·고시 전까지는 서로 간에 합의로 계약해지가 가능하다. 계약해지는 서로 간에 ‘합의’를 전제로 두고 있다. 그런데 무궁화신탁이 합의에 응하지 않으면 사실상 계약해지는 어렵다. 계약을 해지하더라도 신탁보수 청구 및 손해배상 등의 소송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만평=한국주택경제신문 편집국]
[만평=한국주택경제신문 편집국]

실제로 무궁화신탁은 계약해지를 선택했던 조합으로부터 소송을 통해 신탁보수 등의 명목으로 수억원을 챙겼다. 이화연립 소규모재건축조합은 무궁화신탁이 사업대행자로 지정·고시되기 전 계약해지를 요구했다. 예비 사업대행자로서의 역할이 미미하고, 수수료가 과도하다는 점 등이 이유다. 무궁화신탁은 합의에 응하지 않았다.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후 ‘신탁보수 청구’ 소송에 나섰고, 손해배상 등의 명목으로 약 8억원을 받아갔다.

사업대행자 지정·고시 후 계약해지를 더 어렵게 설정해 놨다는 점도 문제다. 토지면적 2/3 이상 및 조합원 2/3 이상의 동의을 요구하는 등 대행자 지정을 위한 법적 요건보다 더 강화된 조건을 계약서에 명시한 것이다. 현행법상 사업대행자 방식은 조합이 설립된 이후 조합원 과반수 동의 및 토지면적 1/3 이상 신탁 요건을 충족하면 한다.

계약서상의 요건을 충족해 계약해지에 나선다 하더라도 손해배상 관련 규정으로 인해 사업이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무궁화신탁은 계약해지 조건으로 기투입된 사업비용 정산 외에 조합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손해배상금은 전체 신탁보수의 10%로 책정했다.

특히 무궁화신탁은 관리처분계획수립 단계에서도 계약해지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관리처분계획수립은 조합원의 이익과 분담금이 확정되면서 정비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로 꼽힌다. 무궁화신탁은 계약서에 관리처분계획수립시 사업비 및 분담금 등에 대해 조합과 합의되지 않을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이때 조합은 차입한 대지급금에 대해 정산을 거쳐 무궁화신탁에 지급해야 한다.

반면 계약서에는 조합이 이 단계에서 사업대행업무 및 사업비용 조달 미비 등의 사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근거조항이 없다. 더욱이 무궁화신탁의 귀책사유로 인한 사업 중단 등이 발생할 경우 조합에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규정도 전무하다. 사업이 중단되거나 폐지, 조합과의 계약해지가 이뤄져도 무궁화신탁은 손해 볼 일이 없는 구조가 계약서를 통해 완성된 셈이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에 표준계약서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표준계약서에는 신탁 계약해지 및 사업 완료 후 청산 절차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계약 기준 등을 만들어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신탁사가 지위를 남용해 토지등소유자의 권한을 침해하는 부작용을 방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외에도 일반경쟁입찰을 원칙으로 신탁사를 선정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비사업 협력업체는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에 따라 선정해야 한다. 하지만 신탁사는 협력업체가 아닌 지정개발자에 해당돼 이 기준을 적용 받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신탁사 수수료가 최소 수십억원에 달하는 만큼 선정시 ‘일반경쟁입찰’을 의무화시키는 등 조합원 부담 절감 방안을 마련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궁화신탁과 계약을 해지한 이화연립소규모재건축조합 역시 일반경쟁입찰을 거쳐 신탁사 재선정에 나서면서 수수료 등에 대한 비용을 절감했다. 최소 신탁보수 금액은 기존 29억원에서 18억원, 수수료율도 3.61%에서 2.7%로 낮아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무궁화신탁과 이화연립 계약 사례를 통해 일반경쟁입찰을 거칠 경우 신탁보수가 줄어든다는 점이 증명됐다”며 “신탁사 선정시 의무적으로 일반경쟁입찰을 거쳐 조합원 분담금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탁사는 시공자 선정과 관리처분계획수립 등 주민들을 대신해 정비사업 주요 업무를 대행·시행하고 있다”며 “재산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일반경쟁입찰을 거쳐 선정하는 게 합당하다”고 강조했다.

이혁기 기자 lee@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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