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신속통합기획을 재개발에서 재건축까지 확대하면서, 주요 재건축 단지들도 추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많은 재건축 초기단지들에겐 ‘그림의 떡’이라는 평가다. 지난 2018년 안전진단 기준이 강화되면서, 통과단지가 강화 이전에 비해 약 90%가량이나 감소했기 때문이다. 재건축 연한을 훌쩍 넘긴 노후단지들이 줄지어 안전진단에서 탈락하면서, 안전진단을 연기하는 단지들도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재건축 안전진단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해 많은 지자체장들이 국토교통부에 안전진단 규정 완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국토부는 집값 안정이 선행된 후에 안전진단 완화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강남권에서도 관심 보이는 신속통합기획… 흥행하는 ‘오세훈 표 재건축’
오세훈 시장의 ‘스피드 주택공급’을 위한 신속통합기획을 추진하는 지역이 늘고 있다. 여의도, 노원구 뿐 아니라 강남권에서도 신속통합기획 재건축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신속통합기획은 정비계획 수립 단계에서 공공성과 사업성 균형을 이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정비구역 지정까지 신속한 사업 추진을 지원하는 제도다. 신속통합기획이 전면 도입되면 구역지정에 소요되는 기간이 기존 5년 이상에서 2년 이내로 대폭 단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해 단계별 협의절차와 시·구 합동 보고회 등이 생략 또는 간소화된다. 공공재건축과 달리 공공이 아닌 민간 주도 진행인 것이 특징이다.
당초 신통기획은 공공기획이란 이름하에 재개발사업을 대상으로 적용하던 정책이다. 하지만 주택 공급 활성화 차원에서 재건축에도 도입하게 됐다. 오 시장은 지난 6월 29일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서 재건축에 공공기획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신통기획 재건축 추진 단지는 지난해와 올 상반기 시범사업지, 하반기 신규사업지를 포함해 총 10곳이다. 해당 단지는 △상계주공5단지 △신향빌라 △오금현대아파트 △구로 우신빌라 △여의도 시범아파트 △대치 미도아파트 △장미1,2,3차아파트 △송파 한양2차아파트 △고덕 현대아파트 △미아4-1구역 등이다.
여의도, 강남 등 서울 주요 도심에서도 추진을 검토하는 단지가 늘어나고 있다. 여의도에서는 한양아파트와 삼부아파트 등이 동의서 징구 절차에 착수했다. 강남권에서는 은마아파트가 동의서 징구 절차를, 서초 신반포2차가 사전 작업에 들어갔다. 더불어 압구정지구 내 최대 재건축단지인 압구정3구역은 조합이 서울시에 신속통합기획 설명회를 요청했다. 조합은 설명회 이후 조합원들의 의견을 반영한 뒤 참여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지난 2018년 안전진단 기준 강화… 사업 초기 단지에게 신통기획은 ‘유명무실’
하지만 안전진단이 강화되면서 신속통합기획을 신청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곳이 수두룩하다. 안전진단을 통과해야 정비계획을 수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2018년 3월 재건축사업의 안정성 확보와 주거환경 개선 등을 취지로 안전진단 절차 및 기준을 강화했다.
안전진단 절차 및 기준은 3가지로 나뉜다. 구조안전성, 건축마감 및 설비 노후도, 주거환경 등이다. 먼저 구조안전성의 비중을 20%에서 50%로 대폭 상향했다. 건축마감 및 설비 노후도는 30%에서 25%로 내리고, 주거환경은 40%에서 15%로 낮췄다.
더불어 정밀안전진단을 마친 단지가 조건부 재건축 판정(D등급)을 받을 경우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를 또 받도록 강화했다.
이에 따라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하고도 적정성 검토에서 탈락한 단지들이 늘고 있다. 올해 3월 양천구 목동재건축 11단지, 6월 강동구 고덕주공9단지, 7월 노원구 태릉우성아파트, 11월 광진구 광장극동아파트 등이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실제로 정부가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한 이후 심의를 통과한 지역이 급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안전진단이 강화되기 전 3년(2015년 3월~2018년 3월) 동안 통과한 단지는 56곳이다. 반면 안전진단이 강화된 뒤 3년(2018년 3월~2021년 3월) 동안 통과한 단지는 5곳에 불과했다. 무려 89%가 감소한 것이다.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했음에도 적정성 검토를 미루는 단지도 생겼다. 노원구 상계6단지, 강동구 명일 우성아파트, 한양아파트 등이 안전진단을 연기했다.
사실상 재건축 초기단지들은 안전진단의 장벽에 가로막혀 신속통합기획에 진입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자체장들 안전진단 완화 한목소리…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요지부동’
재건축 초기 단지들이 안전진단에서 발목을 잡히자 지자체가 나섰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속적으로 정부에 안전진단 완화를 요구하고 있고, 지난 10월 김수영 양천구청장, 노승록 노원구청장, 박성수 송파구청장은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을 만나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국토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집값 안정화가 선행돼야 안전진단 완화 관련 논의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보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 5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안전진단 완화 불가 방침을 공식적으로 발언한 바 있다.
한편 재건축 안전진단은 예비안전진단(현지조사), 1차 정밀안전진단(정밀안전진단), 2차 정밀안전진단(적정성 검토) 등 3단계로 이뤄진다. 안전진단 평가 등급은 A~E 총 5등급으로 나뉜다. A~C등급(55점 초과)을 받으면 유지·보수로 분류돼 재건축이 불가능하며, 재건축을 진행하려면 D(31점~55점), E등급(31점 미만)을 받아야 한다. 만약 1차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을 경우 적정성 검토를 거쳐 최종 재건축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E등급을 받으면 적정성 검토 없이 재건축을 진행할 수 있다. 적정성 검토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국토안전관리원 등 공공기관이 진행한다.
이호준 기자 leejr@aru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