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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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의 조례에서 정한 해제기준을 충족했다는 이유로 정비구역을 해제한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확산되고 있다. 법적 해제요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조례만을 기준으로 구역해제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4일 청주지방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송경근)은 운천주공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 청주시장을 상대로 낸 ‘정비구역해제처분 등 취소의 소’에서 조합 승소판결을 내렸다. 시의 해제기준에 부합한다는 근거만으로 정비구역 해제처분을 내린 것은 정당성·객관성이 결여되어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위법하다는 취지다.

판결문에 따르면 청주 운천주공아파트는 지난 2016년 6월 토지등소유자 1,091명 중 995명의 동의(동의율 91.2%)를 얻어 시로부터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2018년 12월 일부 토지등소유자는 총 298명의 동의서를 첨부해 정비구역 해제를 요청했다. 시는 298건 중 278건을 유효한 것으로 처리해 청주시 정비구역 등의 해제기준에서 정한 정비구역 직권해제 검토 개시요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시는 조합으로부터 조합운영, 사업의 경제성 등에 관한 자료를 받아 2019년 3월 정비구역 해제 실무위원회를 개최했다. 실무위는 검토결과 ‘비례율 96.08%, 평균 추정분담금 비율 36.96%’로 산출되어 해제기준에서 정한 기준보다 경제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이어 시는 2019년 4월 운천주공 재건축사업에 대한 주민의견 찬·반 조사 등을 진행했고, 전체 토지등소유자의 과반수인 926명이 의견조사에 참여해 497명(참여자의 53.7%)가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시는 2019년 9월 정비구역 해제 처분 후 조합설립인가 취소, 사업시행계획인가 취소 등을 각각 고시했다. 이에 조합은 정비구역 해제요건에 관한 실질적인 이익형량을 해태하는 등의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위법하므로 해제 처분 등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시가 조례나 해제기준을 충족했다는 이유만으로 해제처분을 내린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정비구역 해제여부를 검토함에 있어 해제기준에 가까스로 부합하더라도 실질적인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판결은 지난해 11월 서울고등법원의 ‘소사1-1 정비구역 등 해제처분 등 취소’ 소송과 유사하다. 당시 재판부도 지자체의 조례기준을 만족했더라도 법적 해제사유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구역해제가 위법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즉 조례에서 정한 해제기준이 법령에서 정한 해제기준을 충족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해당 재판의 변호를 담당했던 법무법인 조운의 박일규 대표변호사는 “이번 판결도 서울고등법원이 법적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판단과 매우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며 “향후 구역해제와 관련된 소송에서는 법령에서 정한 기준인 ‘토지등소유자에게 과도한 부담’과 ‘정비구역 지정 목적 달성 여부’에 대한 실질적인 심사나 검토여부가 쟁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자체가 해제의 편의성을 위해 법적인 요건을 검토하지 않은 채 조례나 기준만을 근거로 정비구역이 해제된 곳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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