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결국 청계천·을지로 일대 정비사업에 대해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해당 지역의 정비사업에 대한 계획과 보존 원칙 등을 재검토하고,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이주·철거를 중단하고, 인·허가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이미 이주·철거가 진행된 재개발 막바지 단계에 이른 구역마저 사업이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세운지구 일대의 정비사업 중단 사태는 을지면옥, 양미옥 등 노포의 보존 문제로부터 출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을지면옥 등 노포가 철거되는 것에 대해 몰랐다고 해명했다. 미리 알았다면 해당 노포들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계획을 수립했을 것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세운지구 등의 정비사업은 조(兆) 단위의 사업비가 소요되는 사업이다. 시의 주장대로 당분간 멈춘다고 하더라도 이에 따른 피해 규모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적, 경제적 피해는 당연히 해당 지역의 소유자들이 입게 된다는 것도 자명하다.


하지만 시는 사업 중단만 선언했을 뿐 이에 대한 책임은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할 때에는 역사적 유물 및 전통건축물의 보존계획 등을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전 현장조사를 통해 해당 지역에 역사적 유물이나 전통 건축물 등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박 시장의 주장처럼 을지면옥, 양미옥 등이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생활 유산’이라면 계획 수립 전에 조사를 통해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만약 을지면옥 등이 철거 대상에 포함됐는지에 대해 정말로 몰랐다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법에서 정한 기본적인 사항조차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가 마련하겠다는 종합대책도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강북 삼양동 옥탑방에서 거주하면서 ‘서민 시장’이란 이미지를 쌓아온 박 시장이다. 벌써부터 소유주들에게 무조건적인 양보, 혹은 손해를 감수하라는 식의 대책이 나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그동안 ‘중단’이나 ‘재검토’를 선언한 현장에서 나온 대응 방식이 대부분 그러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시는 생활 유산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이번 세운 사태의 모든 책임은 서울시에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박노창 기자 par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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