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를 맞아들이는 것도, 연을 맺었던 업체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그다지 수월하지 않다. 

해지의 대상이 정비업체, 설계업체, 시공사 등 정비사업의 중추를 담당하던 곳이라면 해지의 진통과 여진 탓에 한동안 사업이 멈추어 서는 현상도 드물지 않다.

이렇듯 조합의 주요 협력업체 변경은 그 자체만으로 사업 지연과 조합 내부의 갈등 격화라는 리스크를 동반하기 마련이라 상쇄할만한 필요성과 구체적 이익이 뒷받침될 때 매우 보수적으로 실행하는 편이 현명하다.

주요 협력업체의 교체 이슈가 조합의 사업 진행에 불확실성을 더한다고 해도 이는 사회적·정치적 현상이 그렇다는 것일 뿐, 법적·규범적 차원에서조차 그 불확실성을 부채질하며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서울 강북의 모 재개발 구역에서 기존 정비업체를 해지하고 새로운 업체를 선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었다. 

조합 집행부가 교체되었다고 해도 기존 협력업체들이 반드시 함께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당 조합에서는 여러 각도로 정비업체 변경이 불가피하다고 여겼던 듯하다. 

계약 해지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기존 정비업체는 조합의 새로운 업체 선정을 중지해 달라는 취지의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했고, 이에 대한 법원의 응답은 놀랍게도 기존 정비업체의 지위에 관한 문제가 정리될 때까지 새로운 업체 선정절차를 진행하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기존 정비업체와의 관계가 명확히 정리될 때까지 새로운 정비업체 선정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법률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전제를 깔고 나서야 비로소 정당화될 수 있다.

그 전제는 바로 ‘조합이 정비업체를 반드시 한 곳만 선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정비업체를 두 곳 이상 선정하고 계약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기존 업체와의 관계 정리가 새로운 업체의 선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에 애당초 새로운 선정절차를 막아달라는 주장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가벼운 상식으로 조합의 정비업체는 하나가 당연하다고 여길 분들도 있겠지만 조합이 왜 정비업체를 둘 이상 선정할 수 없는지 근거를 대라며 정색하고 나서면 우물거릴 수밖에 없다. 도시정비법령 어디에도 정비업체를 한 곳만 선정해야 한다는 규정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시정비법은 조합과 정비업체와의 계약관계를 ‘위임’으로 상정하고 있으니 대표적 위임계약을 예로 들어보자. 

중대한 송사가 생겨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변호사를 찾아 사건을 맡겼는데 어인 일인지 그 변호사의 역량이 미덥지 못하다면? 그 부족함을 보완할 변호사를 물색해 대리인을 추가 선임할 수 없는 노릇일까. 법령상 금지할 근거도, 사회적 필요성도 없다. 추가 선임 금지를 주장할 수 있는 경우는 기존 변호사와의 위임계약 속에 기존 대리인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하는, 이례적인 조항이 담겨있을 때가 유일하다.

두어 해 전 서울고등법원은 조합의 시공자가 ‘독점적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약정 등 특별한 근거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적 있다. 독점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시공자는 조합과 다른 시공자의 계약관계에 대해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쯤에서 결론을 내려보자. 기존 정비업체와의 관계가 정리될 때까지 새로운 정비업체 선정업무를 진행하지 못하게 하려면 기존 정비업체의 독점적 지위가 전제되어야 한다. 독점이 아니어서 지위의 양립이 가능하다면 굳이 기존 업체와 새로운 업체의 관계를 연동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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