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위원회에서 뽑은 정비업체가 조합에 승계되는지에 대한 논란은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다. 법제처, 국토교통부, 하급심 법원들은 승계된다, 승계되지 않는다는 서로 다른 결론을 내놓았지만, 서울고등법원이 2021년, 2022년 연이어 승계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고 두 판결이 모두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의 형태로나마 확정되면서 승계되지 않는다는 쪽으로 추가 기울었다.  

앞으로 정비업체를 뽑아야 하는 추진위원회는 정비업체 계약 시 계약 범위를 조합설립인가 시까지로 한정하고 그 이후의 업무에 대한 고려없이 용역비 및 지급비율을 정하면 된다. 조합설립 이후에는 새로 선정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정비업체 입장에서는 야속할 수도 있지만 추진위원회 때 실력을 입증하여 선정절차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고 조합이 가산점을 주는 것도 가능하다. 조합설립 후 정비업체 선정 시까지의 공백은 단기 용역, 추가 직원 채용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미 조합이 설립되었고 추진위원회에서 뽑은 정비업체와 계속 일을 하고 있는 경우에는 확인해야 할 사항이 몇 가지 더 있다. 법률상으로는 조합의 정비업체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조합은 총회를 열어 정비업체를 뽑아야 하는데, 이때 조합이 선정안건이 아닌 추인안건을 올릴 수 있는지가 그 첫 번째다. 

도시정비법은 경쟁입찰의 방법을 위반하여 계약을 체결한 조합임원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고 이는 강행규정으로 엄격히 준수되어야 한다는 점을 들어 조합이 추인안건을 올릴 수 없다는 해석도 있으나, 이는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도시정비법이 경쟁입찰을 거치도록 한 것은 업체 선정과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므로 추진위원회에서 정비업체를 선정할 당시 법령이 정한 경쟁입찰 절차를 거쳤다면 비록 조합이 재차 경쟁입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입법취지가 훼손되었다고 볼 수 없고, 조합은 추인안건이 부결되면 선정절차를 진행하게 되므로 조합원들의 선택권이 제한되는 것도 아니다. 

도시정비법이 처벌하는 것은 경쟁입찰의 방법을 위반하여 계약을 “체결한” 행위이므로 새로운 계약체결 없이 소극적으로 무효인 계약을 추인하는 행위가 처벌대상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부산고등법원 역시 조합이 입찰절차를 거치지 않고 총회에서 추진위원회의 정비업체 선정결의를 추인하고 무효인 용역계약의 존속을 의결한 사안에서, 조합이 관련 법령의 입법취지를 잠탈한 것은 아니라면서 조합의 추인결의를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주민총회에 불과한 창립총회에서의 추인으로는 하자가 치유되지 않으므로, 조합은 반드시 조합설립 후 개최된 총회에서 추인결의를 하여야 한다. 

 추인결의를 하기 전까지는 상태는 괜찮은걸까. 도시정비법은 총회의결이 필요한 사항임에도 총회의결을 거치지 않고 임의로 사업을 추진한 조합임원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고, 실제로 몇몇 행정청은 위 조항을 근거로 추진위원회에서 뽑은 정비업체와 계속 일을 하고 있는 조합장을 형사고발하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국 모든 조합이 추진위원회에서 뽑은 정비업체가 조합으로 승계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대로라면 대다수의 조합장님들이 범죄자가 될 판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위법을 창출하는 행위와 소극적으로 위법 상태를 해소하지 않은 행위는 분명한 차이가 있고 특히 그 차이가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라면 그 구분은 더욱 엄격해야 하는바, 조합이 추진위원회에서 선정한 정비업체와 계속 일을 하는 것이 범죄구성요건에 자체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이 경우는 단순한 법률의 부지와는 달리, 법률해석에 대해 유관 행정청 및 하급심 법원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행위자가 위법성을 인식할 수 없었던 사정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경우이므로, 정당행위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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