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설=주택법 시행령 제20조제3항, 주택법 시행규칙 제7조제5항에 따라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의 체결’을 위해서는 반드시 총회 의결을 거쳐야만 한다. 이는 소수 임원의 전횡을 사전에 방지하고 이를 통해 지역주택조합과 그 조합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자의 결단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총회 의결 없이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이 체결되었다면 이는 강행규정에 반하는 것으로서 사법상 효력이 인정될 수 없다. 만일 지역주택조합의 조합장이 주택법령 및 조합규약에 반하여 총회 의결이라는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을 체결한 뒤 독단적으로 조합 자금을 지출하였다면 법적으로 어떤 책임을 지게 되는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사안의 개요=A조합의 조합장 B는 이미 ◯◯업체와의 사이에 금융자문계약이 체결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계약과 업무 내용이 중복되는 새로운 용역계약을 △△업체와 추가 체결하였다. 위 중복계약에 따른 용역비 지출에 관하여 예산이 편성된 사실이 없어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에 해당하므로 법령 및 규약에서 정한 바에 따라 이에 관하여 반드시 총회 의결을 거쳐야만 했다. 그러나 B는 그러한 절차 없이 급조된 이사회만을 거쳐 위 중복계약을 체결한 뒤 △△업체에 계약금을 지급하였고, 이에 A 조합은 B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3. 관련 법리=주택법에 의하여 설립된 주택조합은 비록 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고유의 목적을 가지고 사단적 성격을 가지는 규약을 만들어 이에 근거하여 의사결정기관인 총회와 운영위원회 및 집행기관인 대표자를 두는 등의 조직을 갖추고 있고, 의결이나 업무집행방법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행해지며 조합원의 가입탈퇴에 따른 변경에 관계 없이 조합 자체가 존속하는 등 단체로서의 중요사항이 확정되어 있는 점에 비추어 그 명칭에도 불구하고 비법인사단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법인사단에 대하여는 사단법인에 관한 민법 규정 가운데서 법인격을 전제로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를 유추적용하여야 한다(대법원 1997.1.24. 선고 96다39721, 39738 판결 등 참조).

사단법인의 이사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그 직무를 행하여야 하고(민법 제61조), 이사가 그 임무를 해태한 경우 그 이사는 법인에 대하여 연대하여 손해배상의 책임을 부담하는 바(민법 제65조), 이러한 규정은 비법인사단에 해당하는 지역주택조합의 임원에 대한 관계에서도 그대로 유추적용된다.

4. 법원의 구체적 판단=법원은 B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조합의 업무를 수행할 의무를 게을리 하여 A조합에 △△업체에 지급한 계약금 상당의 손해를 가하였으므로 선관주의 위반이라는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으로서 해당 금원만큼을 A조합에 배상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는데, 그 구체적인 논거는 다음과 같다.

①B가 체결한 △△업체와의 중복계약에 따른 용역대금이 A조합의 예산으로 정하여지지 아니한 이상 해당 계약의 체결은 주택법 시행규칙 제7조제5항제3호에서 규정한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에 해당하므로, 강행규정인 동 시행령 제20조제3항에 따라 A조합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만 한다. 그러나 B는 총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았음은 물론 의결을 거치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②B가 주택법령의 관련 규정을 알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A조합의 규약은 주택법령과 동일하게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에 부담이 될 계약은 총회의 의결을 거쳐 결정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었던 이상, 조합장인 B로서는 해당 중복계약의 체결에 총회 의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위 사건에서 B는 해당 중복계약이 법률적으로 무효에 해당한다면 A조합으로서는 이미 지급한 계약금을 다시 △△업체로부터 원상회복받을 수 있어 손해를 입지 않았다고도 항변하였으나, 법원은 위와 같은 원상회복이 실제 이루어지지 않은 이상 A조합에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음을 이유로 B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5. 검토=최근 대법원이 강행규정인 관련 주택법령을 준수하지 않은 채 총회 의결 없이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을 체결한 경우 해당 계약은 무효라는 결론(대법원 2022.8.25. 선고 2021다231734 판결)을 내림에 따라 조합으로서는 총회 의결 없이 체결된 계약의 효력을 훨씬 용이하게 다툴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정해진 절차를 경유하지 않은 채 불필요하게 조합 자금을 지출한 조합장을 상대로 민형사상의 책임을 추궁함에 있어서도 법리적으로 보다 우위에 설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앞에서 소개한 사례는 조합장이 주택법령과 조합규약에서 정하고 있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조합 자금을 지출하였을 때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해당 사안에서는 불필요하게 자금을 중복 지출한 행위에 대한 형사적 책임이 직접적으로 문제되지는 않았으나, 적법한 절차를 생략한 채 쓰지 않아도 되는 금원을 임의로 지출함으로써 선관주의의무에 위반하여 조합에 재산상 손해를 발생시킨 점에 관하여는 업무상 배임죄 등의 형사책임이 문제될 가능성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위 사례를 들어 총회 의결 없이 예산외의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자금을 지출한 모든 행위에 대하여 일률적으로 민형사상의 책임 추궁이 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긴급을 요하는 정도에 따라 계약을 먼저 체결하고 사후 추인 방식으로 절차상의 하자를 보완할 수도 있는 것이고, 사업의 원만한 수행을 위해 해당 계약 및 자금의 지출이 필요하였다는 점이 어느 정도 확인된다면 단지 절차 위반이라는 사유만으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 내지 업무상 배임죄의 죄책이 인정된다고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도시정비법과 달리 주택법은 총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계약을 체결하였다고 하여 곧바로 형사처벌하도록 하는 벌칙 규정을 아직 따로 두고 있지 않다).

다만, 법령에서 명시하고 있는 절차와 방식을 가볍게 여기고 조합장 및 소수 임원의 전권에 따라 자금을 마음껏 지출한 행위가 임원의 주의의무 위반 및 업무상 배임의 고의를 추단케 하는 주요 징표가 된다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조합원들의 견제 없이 이러한 행위가 누적되었을 때의 폐해에 대해서도 일부 부실 조합의 비리 사례를 통해 충분히 목격한 바 있다. 지출이 일정 수준 예상되는 용역비에 대해서는 가급적 미리 예산안에 편성을 해두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해당 내용에 대하여 조합원들에게 투명하게 공표하고 신속하게 총회 추인을 받는 등 향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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