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서는, 대법원 2023. 2. 2. 선고 2019다232277 판결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정비사업은 사업 규모가 매우 크다. 수천억 원이 넘는 사업비를 자랑하는 현장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건축시설공사비, 손실보상비, 관리비, 정비사업비, 조사측량비, 외주용역비 등 정비사업비의 항목도 다양하다. 

그런데 정비사업 주체인 조합은 건물을 지어 분양할 때까지 수입이 발생하지 않는다. 분양은 정비사업 막바지에 하므로, 조합은 정비사업 기간 대부분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비용을 지출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조합은 금융기관, 시공사 등 외부로부터 정비사업자금을 차입하게 되는데, 이 중 시공사는 자금차입에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시공사는 자금차입능력을 자신의 스펙으로 홍보하고, 조합으로서도 그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시공사는 자금차입을 위해 공사도급계약에 그 내용을 포함하고 이와 별도의 소비대차계약을 체결한다. 

여기에 조합 이사 등의 연대보증이 추가되는데, 연대보증은 시공사의 차입금을 보장하고 공사도급계약의 해지 위험을 낮추는 등의 역할을 한다. ‘우리는 하나다.’를 보여주는 장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사업이 어디 있으랴. 굳건히 공사도급계약과 소비대차계약을 해도 이를 해지하는 현장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시공사로서는 가처분, 소송 등으로 공사도급계약의 해지를 다투지만, 해당 조합과 결별하기로 결정하는 경우에는 빌려준 자금을 회수하는 것에 집중한다. 이와 관련하여 의미있는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자.

대법원 2023. 2. 2. 선고 2019다232277 판결인데, 위 판결의 사실관계는 이렇다. 조합설립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재개발사업시행을 위해 시공사를 선정하는 결의를 하였고, 소비대차약정을 포함한 공사도급(가)계약을 체결하였으며, 추진위원들은 연대보증을 하였다. 

이에 따라 추진위원회는 시공사로부터 약 34억 원을 대여하였으나, 법원의 판결 등으로 해당 시공사 선정결의가 무효로 확인되었고, 이후, 시공사는 조합과 연대보증인을 상대로 대여금 소송을 제기하였다. 

다른 사안과 차별화되는 점은 시공사의 선정결의가 무효로 확인되었다는 부분이다. 빌려준 자금은 당연히 갚아야 하지만, 그 기초가 된 시공사 선정결의가 무효인 경우에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 것이다.

위 대법원 판결의 2심은, 공사도급계약이 무효인 이상, 소비대차약정도 무효이고, 이를 주채무로 하는 연대보증채무 역시 보증채무의 부종성에 따라 소멸하였다고 하여 시공사의 대여금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추진위원회와 시공사는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이루어진 시공사 선정결의의 법적 효력이 분명하지 않아 공사도급계약이 무효로 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였고 거기에 소비대차약정도 포함시킨 점, 추진위원회와 시공사는 공사도급계약이 무효가 된다고 하더라도 장차 조합이 설립되면 조합 총회 결의를 통하여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이루어진 시공사 선정결의나 공사도급계약이 유효로 될 수 있다는 사정을 염두에 두었다고도 볼 수 있는 점, 시공사는 시공사 선정결의에 관하여 무효확인을 구하는 소가 계속 중인데도 지속적으로 추진위원회에 금전을 대여하고 일부 대여금에 관하여는 추가로 소비대차계약 공정증서를 작성받기도 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추진위원회와 시공사는 공사도급계약과 소비대차약정을 체결할 당시 공사도급계약이 무효로 된다고 하더라도 소비대차약정을 체결, 유지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하여 시공사의 대여금 청구가 타당하다고 보았다. 

공사도급계약과 소비대차약정이 경제적, 사실적으로 일체로서 행하여져 하나의 계약인 것 같은 관계에 있다고 인정되더라도 소비대차약정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 판단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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