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회사가 정비사업의 시행업무를 수행하는 신탁방식의 정비사업은 안정적이고 투명한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는 점과 비대위와 집행부 간의 조합 내부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등 여러 장점을 바탕으로, 최근 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나 2016년 도시정비법 개정에 따라, ‘토지등소유자(조합원)의 과반수 동의 요청’만으로 신탁회사 등으로 하여금 정비사업을 대신하여 시행할 수 있게 하는 ‘사업대행방식’의 정비사업 시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탁방식의 정비사업 추진이 대대적으로 도입되었음에도 이에 발맞춘 제도적 개선은 제때 이루어지지 않음에 따라, 일부 사업장의 경우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을 신탁회사와 체결한 뒤 골머리를 앓는 사례도 늘고 있다. 가령 사업대행자로 지정된 신탁회사가 성실히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 경우 조합은 해당 신탁회사와의 계약을 해지하고자 하는데, 대개의 경우 신탁회사가 제시하는 신탁계약서는 토지등소유자 전원 또는 4/5 이상의 동의를 요하는 것으로 정해놓는 점이 문제된다. 이에 따른다면 신탁계약 해지를 위한 요건 충족이 사실상 불가능해져 조합이 자의로 신탁계약을 종료시킬 방법이 없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전적으로 조합의 의사에 따라 사업대행방식이 채택되어 체결된 신탁계약이 조합의 명시적 해지의사에도 불구하고 종료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결론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도시정비법은 제28조제1항제2호에서 토지등소유자 과반수의 동의로 사업대행자 방식의 정비사업 시행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진행된 사업대행방식 개시 결정을 취소하고 다시 조합이 직접 사업을 시행하는 방식으로 회귀하기 위해서 어떤 절차와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정하는 바가 없다. 

도시정비법에서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를 통해 사업대행자 방식의 사업이 가능하도록 규정한 것은, 주민들이 정비사업 추진 방식에 관하여 다양한 선택지를 가지게 함으로써, 사업을 시행하는 주체인 조합원들의 전적인 의사에 따라 정비사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끔 선택의 폭을 넓혀준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조합원들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진 사업대행개시 결정을 철회하고 조합이 직접 사업을 시행하는 방식으로 회귀하는 것 역시, 조합원들의 동의를 기반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사업대행개시 결정 취소에 필요한 정족수 역시 사업대행자 개시 결정과 동일하게 조합원 과반수 동의면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조합이 사업대행개시 결정을 취소하는 내용으로 조합원 과반수 동의를 받아 행정청으로부터 사업대행자개시 결정 취소 처분을 받게 되면, 궁극적으로 ‘신탁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여 신탁계약 종료사유가 발생하게 되므로, 계약서에서 정하는 신탁계약 해지 요건을 충족하였는지와 무관하게 조합과 신탁회사 간의 신탁계약은 종료될 수 있다. 

부산의 한 재개발구역 사례에서도 조합원 과반수 동의에 따라 사업대행개시결정이 취소되었고, 법원 역시 이를 기반으로 한 신탁계약 해지에 위법이 없다고 판단한 바 있고(서울중앙지방법원 2021카합), 강릉의 한 사업장에서는 기존 신탁계약을 체결한 회사 외에 다른 신탁회사를 사업대행자로 지정하는 사업대행개시결정이 내려진 사안에서, 기존 신탁회사와의 계약은 목적 달성 불능으로 종료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서울고등법원[춘천] 2022나).

위와 같은 취지의 법원의 결정은, 신탁회사와의 계약 종료에 있어 조합 내부의 의사결정에 관한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 조합과 신탁회사 간의 당사자 합의만으로 도시정비법에서 정하는 정족수 요건을 가중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에서도, 타당한 결론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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