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탁사들의 정비사업장 ‘선점’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비사업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예비신탁사 선정이 성행하면서 이른바 ‘깃발 꽂기’ 꼼수가 나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반 조합방식 정비사업의 경우 가칭 추진위 단계에서 정비업체 또는 설계자 등을 선정할 경우 처벌을 받는데 반해, 예비신탁사에 대한 별도의 규제는 없는 상황이다.

현재 예비신탁사 선정에 대한 법적 근거는 없다. 문제는 신탁사가 예비신탁사 지정을 위한 물밑작업을 통해 가칭 추진위원회를 지원한 후 선정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일반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작용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한 사업장에 다수 신탁사가 예비신탁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두 곳의 추진주체가 구성되는 등 순조로운 사업 추진을 가로막고 있다. 실제로 경기도 한 재개발구역은 가칭 추진위원회와 준비추진위원회가 각각 예비신탁사를 선정했다. 이들은 서로 선정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편의제공 및 결탁 등에 대한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서울 한 재건축사업장에서는 신탁사가 가칭 추진위원회 구성을 지원하면서 예비신탁사로 선정되는 사례가 포착됐다. 사실상 사업장 선점을 위한 물밑 지원을 바탕으로 예비신탁사 선정까지 이어진 셈이다.

예비신탁사를 선정한 후 조합에게는 불리한 일방적인 계약체결이 이뤄진다는 점에서도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조합으로서는 부족한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신탁사와의 동행을 택했지만, 이를 악용한 사례가 나오면서 조합원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강원도 한 정비사업장은 예비 사업대행자로 신탁사를 선정한 후 사업대행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신탁사의 과도한 수수료 및 업무 참여도 미비 등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했다. 하지만 신탁사는 자사에 유리한 계약내용을 빌미로 신탁보수 청구 소송을 제기해 조합으로부터 약 8억원을 챙겼다.

지난 2016년 정비사업에 신탁방식이 도입된 지 약 7년이 지났다. 우려되는 부분은 지금도 신탁방식 정비사업에 대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지만, 앞으로 신탁사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신탁방식 정비사업을 추진할 경우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입안제안을 허용하면서다. 

정부는 정비사업에 대한 신탁사의 활발한 진출을 유도하기 전에 이미 발생하고 있는 부작용들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부터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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