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한국주택경제신문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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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법적 근거가 없는 ‘예비신탁사’ 선정이 성행하고 있다. 정비사업의 극초기 단계에서 가칭 추진위원회가 특정 신탁업체를 예비신탁사로 선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가칭 추진위원회의 경우 법적 대표성이 없는 임의단체로 예비신탁사를 선정할 권한이 없는데다, 예비신탁사라는 지위마저도 사실상 허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예비신탁사 선정은 신탁업체들이 정비사업에 깃발을 꽂기 위한 꼼수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서울은 물론 지방에서도 가칭 추진위가 예비신탁사를 선정해 양해각서(MOU)까지 선정하는 구역들이 늘고 있다. 이달만 하더라도 서울과 경기도, 부산 등에서 최소 5~6개 구역이 예비신탁사를 선정하거나, 선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예비신탁사 선정이 사실상 정비사업을 선점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는 사업시행자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조합설립동의율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신탁업체가 동의를 받기 전에는 토지등소유자별 분담금 추산액과 산출근거, 추정분담금 산출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사업대행자의 경우에도 토지등소유자나 조합원의 과반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예비신탁사라는 근거가 불분명한 지위를 통해 사실상 사업을 선점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통상 예비신탁사는 가칭 추진위원회나 추진준비위원회 등이 선정하는데, 법적으로 협력업체를 선정할 권한은 없다. 현행법상 가칭 추진위가 정비업체나 설계업체 등을 선정할 경우 처벌을 받게 된다. 

결국 가칭 추진위가 선정한 예비신탁사도 법적 지위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신탁업체는 독점적인 동의서 징구 권한을 받은 것처럼 예비신탁사 선정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탁업체가 가칭 추진위 구성을 지원해 예비신탁사로 선정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실제로 서울의 한 재건축 단지에서는 조합방식과 신탁방식을 두고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추진준비위는 설문투표를 실시한 결과 99% 이상이 신탁방식을 찬성했다는 이유로 예비신탁사 선정에 나섰다. 

하지만 해당 단지는 2,400세대에 달하는 대단지인데 반해 투표에 참석한 사람은 300여명에 불과해 실제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됐다고 보긴 어렵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따라 관할 구청에서는 사업방식에 대해 검토를 거쳐 주민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라는 권고안을 내리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 구역에서 2개의 예비신탁사를 선정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재개발구역에서는 추진준비위원회와 가칭 추진위원회가 각각 예비신탁사를 선정하면서 논란이 됐다. 두 위원회는 자신들이 예비신탁사를 선정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며 각자 다른 신탁업체를 선정한 상황이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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