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기간의 장단이 사업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는 재건축 사업도 재개발 사업과 다르지 않다. 

차질 없는 이주, 철거, 착공을 위한 일괄명도는 한때 재개발 현장에서만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웬만한 규모의 재건축 현장들도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소수 세대의 명도 지연으로 조합이 부담하게 될 추가비용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가능해지면서 법률비용 최소화보다 이주 기간 최소화가 사업에 훨씬 유리하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간 재건축 조합들이 일괄명도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은 일괄명도 시스템에 대한 이해 부족과 함께 명도 업무가 재개발 사업의 그것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점도 한몫했다. 재개발 현장의 점유 유형이 다양하고 비정형적이어서 현황파악조차 어려운 것에 비해 재건축 현장의 점유는 획일적·통일적이어서 점유상태 파악이나 소송 진행이 그만큼 단순하다. 

자진 이주를 거부하기 쉬운 현금청산자나 영업권자에 대한 명도소송도 재개발 사업과 재건축 사업이 크게 다르다. 재개발 사업은 명도판결을 얻기 위한 전제로 현금청산자나 영업권자에 대해 협의나 수용재결을 통한 보상금 지급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재건축 사업은 명도를 위해 현금청산이나 영업권을 위한 보상금 지급이 필요치 않다.

하지만 재건축 사업의 명도 업무가 수월하다는 통념이 무색해지는 현상이 점차 늘고 있다. 일부 재판부가 재건축 현장의 세입자나 현금청산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을 명도판결의 전제로 삼겠다는 의지를 소송과정에서 공공연히 표명하는 탓이다.

본래 명도소송과 관련한 보상금의 선지급은 재개발 사업에 국한한 것이다. 도시정비법상 관리처분계획이 인가·고시되면 구역 내 모든 토지 또는 건축물의 사용·수익권이 조합으로 이전되지만, 재개발 사업의 경우에는 공익사업법에 따른 손실보상을 완료하여야 명도판결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재판부는 재개발 사업의 손실보상 완료 규정을 재건축 사업까지 확대·유추 적용함으로써 명도소송 절차에서 현금청산자에 대한 매도청구 소송의 확정을 요구하거나, 매도청구 소송에서 산정된 매매대금의 공탁을 요구한다. 헌법재판소나 상급 법원이 재개발 사업과 달리 재건축 사업에서는 조합이 사용 수익권 취득을 위해 보상금을 미리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일부 법관이 재건축 명도소송에서의 보상금 선지급 문제를 재개발 사업과 같은 수준으로 요구하는 것은 아마도 조합이 보상금도 지급하지 않고 청산자나 세입자를 내쫓는 것은 가혹하거나 공평의 관념에 비추어 적정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재판이 인간적 도리나 상식만으로 진행된다면 그러한 조치도 수긍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도시정비법은 명도에 관한 한 재개발 사업과 재건축 사업을 다르게 취급하고 있다. 

도시정비법 규정의 차이와 상급 법원의 앞선 판결에도 불구하고 재건축 조합에 보상금 선지급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법관 개인의 도덕적 신념이나 확신을 법률에 우선하려 한다는 의혹을 유발할 수 있다. 

법관이 주어진 법과 동떨어진 내용으로 재판을 진행하면 법 해석이 본질인 사법의 영역에서 법을 창조하는 입법의 영역으로 넘어가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커진다. 법을 뛰어넘어 의무 없는 일을 강요하는 것은 정당한 재판이 아니라 형법이 규율하는 직권남용에 불과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현행법의 규율 내용이 법관의 직업적 양심에 비추어 불합리하게 여겨지더라도 해석이라는 명목으로 새로운 법을 만들어 낼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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