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모든 정비사업조합들은 관리처분계획인가 고시가 있으면 구역 내 조합원들의 이주를 위하여 수개월 가량의 ‘이주기간’을 설정하고, 해당 기간 동안 이주를 완료하도록 조합원들에게 안내한다. 

그러나 의외일지도 모르겠으나, 이러한 ‘이주기간’은 도시정비법 등 관련 법령에 규정되어 있는 제도가 아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81조제1항의 해석에 따르면 관리처분계획인가 고시가 있으면 조합은 즉시 구역 내 부동산들의 사용수익권을 취득하므로, 조합원 등 권리자들에게 즉각적으로 부동산의 인도를 청구할 수 있다. 

반면에 관련 법령 어디에도 조합이 조합원들에게 일정 기간 이상의 이주기간을 반드시 부여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의무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조합들은 왜 법령상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주기간을 설정하여 조합원들에게 고지하는 것일까? 

법령에만 따른다면 조합은 관리처분계획인가 고시일 즉시 조합원들의 퇴거를 요구할 수 있으나, 현실적인 측면에서 조합원들이 자진하여 이주하도록 유도하기 위하여는 이들에게 이주계획을 수립하고 새로운 주거지를 마련하여 이사할 시간을 부여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실무적인 필요성에 의해서, 전국의 정비사업조합들은 관습적으로 조합원들에게 이주기간을 부여하여 이주를 촉진한다. 

결국 이주기간의 의미는 조합원들의 불편 및 민원을 최소화하고 원만한 자진 이주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조합이 임의로 설정하여 권고하는 기간인 셈이다.

이처럼 권고적 의미의 제도이기 때문에, 이주기간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조합은 이주하는 자로부터 건물을 적법하게 인도받을 수 있고, 유효한 사용수익권에 기하여 인도받은 건물을 점유·관리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주기간의 의미를 고찰한 흥미로운 부산고등법원 판례가 하나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된 판결이다.

해당 판례는 이주를 지연한 조합원이 조합에 대해 부담하는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책임이 문제가 된 사안으로, 피고는 이주기간 동안에는 부당이득이 성립하지 아니한다고 항변하였다.

재판부는 정비사업조합이 도시정비법 제81조제1항에 따라 관리처분계획인가 고시 시점부터 부동산의 인도를 구할 수 있으며, 설령 조합원들에게 이주기간을 고지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재개발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하여 자발적인 인도 기간을 정하여 공고”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주기간은 조합원이 이를 자발적으로 준수하였을 경우에 한하여 부동산 점유에 따른 부당이득반환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는 조건부 의사표시일 뿐이라고 해석하였다. 

이에 따른 결론으로 이주를 지연한 조합원은 이주기간 동안에도 부동산의 불법점유로 인한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책임을 부담한다고 판시하여, 이주기간과 무관하게 관리처분계획인가 고시 시점부터 부동산 인도의무의 발생을 긍정했다.

흔히 조합들은 이주기간을 안내하면서, ‘이주기간 내에 이주하시는 경우에는 아무런 불이익이 없도록 조치하겠으나, 이주기간을 지나서 이주하는 세대에 대하여는 부당이득반환·손해배상책임을 묻겠다’고 알리곤 한다. 

위에서 소개한 판례는 이러한 조합의 실무 관습을 토대로 당사자인 조합의 의사표시의 내용을 적정하게 해석한 사례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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