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정관에 ‘임원이 직무유기 및 태만 또는 관계법령 및 이 정관에 위반하여 조합에 부당한 손해를 초래한 때’ 해임할 수 있는 것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동안 이 규정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2009년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23조제4항과 관련한 법원의 해석 때문이다.

개정 전 도시정비법은 “조합임원의 해임은 조합원 10분의 1 이상의 발의로 소집된 총회에서 조합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할 수 있다. 다만, 정관에서 해임에 관하여 별도로 정한 경우에는 정관이 정하는 바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2009년 이 조항이 개정되면서 “조합임원의 해임은 제24조에도 불구하고 조합원 10분의 1 이상의 발의로 소집된 총회에서 조합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할 수 있다”로 수정되고 정관에서 해임에 관해 별도로 정할 수 있도록 한 단서가 삭제된 것이다.

이를 두고 법원은 ‘종전에 정관으로 조합임원 해임요건을 강화함으로써 조합임원의 해임이 사실상 불가능하였던 폐단을 없애고자 정관으로 도시정비법과 다른 임원의 해임요건을 규정하지 못하도록 명문화한 강행규정’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에 반해 정관에서 그 절차를 강화하더라도 무효이고, 별도의 해임사유를 정하여 해임을 어렵게 하더라도 주의적 규정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정관이 정한 해임사유가 없어도 언제든지 임원을 해임할 수 있다는 취지의 하급심 판례가 반복되면서 해임절차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해임된 임원이 해임결의를 다투는 것은 거의 승산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서울고등법원에서 임원 해임과 관련하여 주목할만한 판례가 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은 “법인과 이사의 관계는 위임관계이므로 법인은 민법에 따라 원칙적으로 이사 임기 만료 전에도 이사를 해임할 수 있지만, 이러한 민법 규정은 임의규정에 불과하므로 법인이 자치법규인 정관으로 이사 해임사유 및 절차 등에 관하여 별도로 규정을 두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면서 “법인이 정관에 이사 해임사유 및 절차 등을 따로 정한 경우 그 규정은 법인과 이사와의 관계를 명확히 함은 물론 이사의 신분을 보장하는 의미도 아울러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단순히 주의적 규정으로 볼 수 없고, 정관에 해임사유에 관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관에서 정하지 않은 사유로 이사를 해임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직무유기 및 태만 또는 관계법령 및 정관 위반’이라는 정관상의 해임사유를 넓게 해석함으로써 위임계약에서 해지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해임사유 없이도 해임할 수 있다는 기존 판례와 사실상 동일한 결론을 도출했다.

이번 결정에서 기존 판례들이 정관상 해임사유를 주의적 규정으로 본 근거가 되었던 조항, 다시 말해 ‘조합임원의 해임은 조합원 10분의 1 이상의 발의로 소집된 총회에서 조합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할 수 있다’는 도시정비법 규정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재판부는 이를 총회 소집권한이나 소집·의결절차에 관한 특별규정일 뿐, 정관이 정한 해임사유까지 제한하는 근거로 보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규정이 해임총회의 소집권한이나 절차, 정족수에 대해서만 정하고 있으므로, 이를 근거로 정관에서 해임사유를 정하는 것까지 배제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개정취지를 고려하더라도 다소 과격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결정은 상당히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다만 2009년 법 개정 이후 최근까지 조합임원 해임에는 정관이 규정하는 해임사유가 필요 없다는 것이 법원의 거의 확립된 판례였던 만큼, 이번 결정이 법원의 주류적 해석으로 자리잡을 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한국주택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