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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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이 가압류를 피할 목적으로 자금을 현금으로 인출했더라도 채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범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민유숙)은 지난달 16일 ‘강제집행면탈’ 사건에서 부산 A구역 재개발 B조합장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리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판결문에 따르면 지난 2014년 6월 A구역의 시공사는 조합을 상대로 약 61억원 규모의 추가공사비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B조합장은 시공사가 가압류를 걸자 조합자금 전액을 현금 등으로 인출해 보관했다. 검찰은 B조합장이 강제집행을 피할 목적으로 재산을 은닉했다며 ‘강제집행면탈’ 혐의로 기소한다.

이에 대해 1심과 2심은 B조합장이 자금을 인출한 것은 채권자인 시공자를 해할 위험성이 있는 재산 은닉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B조합장에게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강제집행면탈죄는 채권자의 권리보호를 주된 보호법익으로 하는 만큼 채권 존재 여부를 판단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채권의 존재가 인정되지 않을 때는 강제집행면탈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원심에서는 채권의 존재 여부를 심리·판단하지 않은 채 판결을 내린 잘못이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시공사가 제기한 추가공사비 지급 소송은 사실상 조합 승소로 마무리됐다. 당초 1심에서는 시공사의 청구금액 대부분이 인정되어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항소심에서는 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추가공사 실시와 공사대금 지급과 관련한 약정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약정이 있더라도 조합총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아 도시정비법 위반으로 무효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회사가 지출한 공사비 증가액이 조합의 부당이득액이 된다고 볼 수 없어 부당이득반환의무가 없다는 점도 고려했다. 시공사는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상고심이 진행되던 중 소를 취하하면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피해자 시공사의 조합에 대한 추가공사비 채권의 존재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심은 조합에 대한 채권이 존재하는 여부에 관해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유죄로 인정해 강제집행면탈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경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결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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