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그래픽=홍영주 기자]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에는 ‘바이-라인(By-Line)’이라는 것이 있다. 기사 마지막에 붙는 기자의 이름으로, 우리말로 ‘필자명’이라고도 한다. 과거 영문 기사의 끝에 ‘Reported by 아무개’라고 쓰던 것이 관행처럼 굳어진 것이다.

바이라인은 단순히 기자의 이름을 적는다는 의미만을 가진 것이 아니다. 기자의 이름을 넣음으로써 해당 기사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진다는 의미이다. 단독 혹은 특종 기사에 기자의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일종의 훈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재건축·재개발 관련 기사 중에서 바이라인이 없는 기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10대 중앙 종합일간지로 불리는 유명 신문사에서도 바이라인을 명시하지 않은 기사를 인터넷에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A신문은 한남하이츠 시공자 선정과 관련해 특정 건설사의 홍보 내용을 실으면서 ‘○○ 취재팀’이라는 바이라인을 달았다. 실제 취재팀을 구성해 기사를 작성하는 경우에는 취재팀원으로 활동한 기자의 이름을 함께 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해당 기사에서는 기자의 이름이 없이 ○○ 취재팀으로 명기했을 뿐이다.

B신문도 마찬가지다. 해당 신문도 재건축 수주전이 진행되고 있는 구역에서 특정 건설사의 홍보 내용을 그대로 담은 기사를 출판하면서 ‘온라인 뉴스부’라는 바이라인을 달았다. 역시 기자명은 보이지 않았다. C신문도 유사한 내용의 기사를 다루면서 ‘콘텐츠부’라는 바이라인이 전부였다.

심지어 D신문은 바이라인이 아예 없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대 종합일간지의 절반 이상이 바이라인을 달지 않거나, 기자명이 아닌 취재팀이나 온라인 뉴스부, 콘텐츠부 등 정체불명의 바이라인을 달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갑자기 바이라인이 사라진 기사가 많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몇 년 전만하더라도 중앙일간지에서 정비사업 관련 수주전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았다. 시공자 선정에 대한 기사보다는 강남권 재건축단지의 가격 상승이나 하락 등이 기사의 주요 소재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국적인 관심을 받는 대형 단지는 물론 소규모 정비사업에 대한 수주전 기사까지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정비사업에 대한 기사가 급격하게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온라인 미디어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기사량이 늘어났기 때문에 매일 사회 각계각층의 소식이 쏟아지고 있다. 기존에는 이른바 ‘기사거리’를 엄선해 신문지면에 싣는 구조였다면, 온라인이 발전하면서 지면의 한계가 사라졌다. 그만큼 다양한 기사가 생산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됐다는 것이다. 당연히 부동산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정비사업에 대한 기사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불어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건설사가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것도 한 이유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개정되면서 시공자에 대한 규제는 점차 강화됐다. 지금도 시공자 선정 관련 기준은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특히 건설사들의 개별 홍보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질적인 홍보기회는 조합이 마련한 합동홍보설명회 2회가 전부다. 조합원이 건설사의 홍보부스에 직접 찾아오지 않는 이상 건설사가 자사의 장점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는 셈이다. 결국 수주전이 직접 홍보 방식에서 언론을 통한 홍보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조합원들에게 홍보를 하기 위해 사용한 비용을 언론에게 지불하는 방식이 되는 셈이다.

언론사 입장에서도 특정 건설사의 홍보 기사에 차마 기자명을 붙이기가 난감할 것이다. 시공자의 자유로운 경쟁을 규제하는 현재의 제도에서 언론을 통한 대리전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한국주택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