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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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활황기 시절의 정부에게 재건축사업은 ‘미운 오리새끼’와 같은 존재였다. 노후 아파트를 정비하기 위해 필요한 사업임이 분명하지만, 집값 폭등의 원흉이자 투기의 대상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각종 비리까지 발생하면서 ‘복마전’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반면 재개발은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도로나 공원 등 기반시설까지 공급하는 ‘효자’였다. 재건축 위주로 규제 정책을 펼친 이유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주택시장이 침체되면서 건설경기를 부양할 첨병으로 재건축이 지목되고 있다. 재건축에 대한 규제 완화로 조합설립동의율이 재개발보다 낮아지는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다. 도시정비법 제정 이후 최초 사례로 재건축이 속도를 낼 수 있는 배경이 되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조합설립동의율 낮아졌지만, 토지면적 등에서 재개발이 유리

2003년 7월 도시정비법이 최초로 시행될 당시 재개발의 조합설립동의율은 토지등소유자의 80% 이상이었다. 토지면적과는 무관하게 전체 토지등소유자의 비율을 충족하면 되는 셈이다.

반면 재건축의 경우 주택단지 안의 전체 구분소유자·의결권의 80% 이상 동의와 각동별 구분소유자·의결권의 2/3 이상 동의를 충족해야 했다. 

다시 말해 전체 토지등소유자와 지분의 80% 이상 동의에 더해 동별 소유자·지분 2/3 이상의 요건까지 갖춰야 했던 것이다. 여기에 주택단지가 아닌 지역이 포함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소유자 80%와 토지면적 2/3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이후 2007년 12월 법 시행 이후 최초로 조합설립동의율이 완화된다. 재개발은 토지등소유자 75% 이상의 동의만으로 조합설립인가가 가능해졌다. 재건축도 전체 구분소유자·의결권 동의율이 75%로 낮아졌지만, 동별 동의율은 기존과 마찬가지로 2/3 이상으로 동일했다. 주택단지 외 지역도 마찬가지로 변화가 없었다.

2009년 2월에는 토지면적에 대한 동의 기준이 마련됐다. 재개발의 경우 전체 토지등소유자의 75% 이상 동의에 토지면적 1/2 이상의 토지소유자 동의도 받도록 한 것이다. 재건축은 전체 토지등소유자 75% 동의에 토지면적 75% 이상의 동의로 변경됐다. 다만 동별동의율은 구분소유자 동의는 2/3로 동일했지만, 토지면적은 1/2 이상으로 완화됐다.

기존에는 토지등소유자의 수만으로 조합설립 여부가 결정됐기 때문에 소형 지분을 소유한 다수의 동의로 조합설립이 가능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구역 내 상당한 비율의 대지를 소유한 토지등소유자가 재개발에 반대하더라도 머릿수에 밀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재개발을 해야 하는 사례들이 발생한 것이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해당 문제로 인해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갈등이 커졌고, 법령 개정을 통해 해결책을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16년 1월에는 현재의 조합설립동의율이 마련됐다. 재개발은 기존과 동일했지만, 재건축에는 다소 완화가 이뤄졌다. 당시 상가나 특정동이 조합설립에 반대하거나, 소위 ‘알박기’로 인해 장기간 조합을 설립하지 못하는 단지들이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동별동의요건을 낮춰 재건축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럼에도 재건축은 여전히 조합설립동의율이 높은 상황이다. 전체 토지등소유자 동의비율은 동일하지만, 토지면적도 75%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토지지분이 적은 토지등소유자 위주로 동의를 받게 되면 추가 동의를 받아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조합설립동의율 70% 최초 적용… 상가 조합원에 주택공급 어려워져 ‘변수’ 작용

[그래픽=홍영주 기자]
[그래픽=홍영주 기자]

오는 5월부터 도시정비법 제정 이후 최초로 토지등소유자 70%의 동의로 재건축 조합설립이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실제 조합설립기간은 대폭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선 현장에서 조합설립동의서 징구 업무는 동의율 충족에 가까워질수록 힘들어진다. 특히 동의율이 70%를 넘어가면 동의서를 제출하는 토지등소유자가 확연히 줄어든다. 실제로 동의서를 65% 이상 징구하고도 수년간 동의율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업계에서는 마지막 동의서 징구업무를 ‘마의 5%’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따라서 재건축 동의율이 70%로 완화하는 것은 동의 업무가 5%p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구역에 따라서는 조합설립인가를 위한 동의서 징구기간을 수개월 단축시킬 수 있는 변화가 될 수 있다. 전체 토지등소유자의 75% 동의를 받아야 하는 재개발보다 빠르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다만 상가 동의서 확보에는 변수는 존재한다. 상가 조합원에게 주택을 공급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상가 동의에 난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근 강남을 중심으로 재건축 예정단지에서 상가를 분할하는 이른바 ‘상가 쪼개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주택과 달리 상가의 경우 분할에 따른 분양 규제를 벗어난 탓이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20~2023년까지 상가 지분 분할 건수는 무려 123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2020년 12건에 불과했던 분할 건수가 2021년에는 34건, 2022년에는 77건으로 불과 3년 사이 6배 이상이 증가했다.

문제는 해당 상가 쪼개기를 통해 지분을 취득한 소유자가 주택 공급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추진위 입장에서는 상가 동별 동의율을 충족하기 위해 상가 소유자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합설립인가 이후 상가 조합원에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정관 개정을 약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이 해당 정관 변경은 조합원 100%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판결하면서 사실상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고 있다. 극소수의 단지에서 100% 동의를 받은 사례가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단 한명도 반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조합설립동의율이 70%로 낮아졌지만, 상가 소유주에 대한 동의가 새로운 복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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