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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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정비구역 지정 전에 추진위원회를 조기 구성하는 이른바 ‘패스트트랙’에도 공공지원을 적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업지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장 이달부터 조기 추진위원회 구성이 가능해지는데, 이와 관련한 공공지원 예산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예산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예비 추진위 구성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다, 예산 규모도 만만치 않아 자칫 장기간 지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시가 공공지원 적용을 고집하기보다는 주민들이 선택하도록 하는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시가 조기 추진위 구성에도 공공지원 적용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주민대표 연합회는 지난 4월 서울시의회 간담회에서 공공지원 적용 여부를 설문를 통해 주민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사진=서울시 신속통합기획 주민대표 연합회 제공]

6월 4일부터 ‘정비사업 패스트트랙’ 개정법 시행… 정비예정구역 등 추진위 조기 구성 가능

6월 4일부터 이른바 ‘정비사업 패스트트랙’ 방안이 담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본격 시행에 들어간다. 이번 개정법에는 안전진단(재건축진단) 간소화와 전자서명 도입, 재건축 조합설립 요건 완화 등이 포함됐다. 

특히 추진위원회 조기 구성에 대한 업계의 기대감이 높다. 현행법상 추진위원회는 정비구역이 지정된 이후 동의서를 징구해 승인을 받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개정법에는 일정 요건을 갖춘 경우 먼저 추진위를 구성한 후 정비구역 지정이나 조합설립 업무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됐거나 정비계획 입안이 결정된 구역, 정비계획 입안 공람 지역, 재건축진단 통과 구역 등은 추진위를 구성해 정비구역 지정과 조합설립 동의 업무를 병행해 처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개정법이 시행되면 서울에서만 최소 수십곳이 조기 추진위 구성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대형 정비업체를 중심으로 추진위 구성 대상지역에서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 정비업체 대표는 “현재까지 약 20개가 넘는 현장에서 추진위원회를 조기에 구성하기 위한 지원이 가능한지에 대해 문의가 있었다”며 “법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조기 추진위 구성이 불가능한 일부 구역을 제외하더라도 10여개 현장이 준비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정비업체 대표도 “정비구역 지정이 이뤄지지 않은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서 추진위원회 구성을 위한 협조를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아직까지 추진위 설립과 관련한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국토부와 서울시의 지침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조기 추진위에도 공공지원 적용… 최소 수십억원 소요 예상되는데 예산에는 미반영

공공지원 의무적용 질의회신 [사진=서울시]
공공지원 의무적용 질의회신 [사진=서울시]

문제는 서울시가 조기 추진위 구성에도 공공지원제도를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업계에 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시는 지난 2010년 공공관리제도를 도입한 이후 모든 재건축·재개발 현장에 변경된 명칭인 공공지원제를 적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추진위원회 구성 단계에서는 공공지원자인 구청이 예비 추진위원장을 선임하고, 지원 업무를 담당할 정비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비구역 지정 전에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경우에도 동일한 공공지원제도를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시는 지난 3월 추진위원회를 조기에 구성하는 경우에도 공공지원이 적용되는지를 묻는 질의에 “도시정비법 개정에 따른 정비구역 지정·고시되지 않은 지역을 대상으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경우 공공지원 의무 대상”이라며 “보조금 교부시점과 교부금액 등 세부적이고 종합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추후 검토할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시의 답변에도 공공지원을 위한 예산 마련은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현재 시는 관내 조기 추진위 구성이 가능한 대상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공지원에 필요한 예산 규모를 추산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시 담당 공무원은 “현재 각 구청들과 함께 조기 추진위 대상 구역에 대한 현황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올해 예산에는 일반 추진위 구성을 위한 공공지원 예산만 반영되어 있어 추경을 통해 추가 예산을 마련할 계획”이고 말했다. 이어 “사업추진이 시급한 지역 등 선순위 구역에 대해 긴급 지원을 진행하는 등 구청과 협의해 최대한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공지원자인 구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조기 추진위 구성을 위한 비용이 올해 예산에 반영되어 있지 않아 공공지원이 가능할지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아직 추진위 조기 구성과 관련한 구체적인 기준이나 지침이 마련되지 않아 공공지원과 관련한 계획은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며 “공공지원 예산에도 반영되어 있지 않아 시의 지원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추진위 구성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원구청 담당자는 “6월 4일부터 추진위원회를 조기에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은 파악하고 있었지만, 작년 말에 법안이 통과되어 예산에는 반영되지 못한 상황”이라며 “이달 이후에나 추경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법 시행과 동시에 공공지원을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 “공공지원 예산에 초기 자금 융자금 포함하면 최소 수백억원 필요… 행정지연 방치 말고 민간에 풀어줘야”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시가 공공지원을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닌 민간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행정청의 재정적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 사업 지연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민간 방식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시와 구가 조기 추진위 구성과 관련한 공공지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은 추경이 유일하다. 하지만 법령이 시행되면 수십곳에 달하는 구역이 추진위 구성이 가능해지는 만큼 일시에 예산을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약 예산 부족으로 인해 순차적으로 공공지원에 나선다면 후순위로 밀릴 구역들은 법령 개정에 따른 효과를 볼 수 없게 된다. 오히려 정비구역 지정 이후에 추진위를 구성하거나, 조합직접설립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빠를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공공지원을 통해 추진위가 구성되더라도 초기 사업비에 대한 문제는 여전하다. 시는 공공지원구역에 대해 초기 사업비를 저리로 융자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다수의 추진위가 동시다발적으로 구성될 경우 최소 수백원억에 달하는 융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공공지원 방식과 민간 방식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민 설문조사 등을 통해 민간 방식으로 추진위를 조기에 구성할 것인지, 행정청이 예산을 마련되면 공공지원을 적용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 엄정진 사무국장은 “조기 추진위원회 구성에 대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모든 구역에 공공지원을 적용하겠다는 것은 과도한 의욕에 불과하다”며 “예산 부족 문제로 순위를 정해 사업을 진행한다면 신속한 정비사업 추진을 유도하겠다는 법령의 개정 취지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는 물론 구청도 행정적·재정적 부담이 큰 제도인 만큼 민간 방식을 허용하는 방안도 고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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