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비법에서 정한 공사비 검증 대상임에도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도급변경계약을 결의한 것이 유효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공사비 검증이 강행 규정이긴 하지만, 변경계약이나 관리처분계획 결의를 위한 전제 조건은 아니라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또 공사비가 10% 이상 증가하더라도 조합원 2/3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하는 특별정족수가 아닌 일반정족수로 의결이 가능하다는 판단도 내놨다.
서울고등법원 제12-3 민사부(재판장 박형준)는 지난 1월 서울 강남구 A재건축의 조합원이 조합을 상대로 낸 ‘총회결의 무효 확인’ 항소심에 대해 기각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 따르면 A재건축조합은 지난 2015년 10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조합원 분양신청 절차를 거쳐 이듬해 6월 관리처분인가를 받았다. 이어 같은 해 8월 조합은 시공자와 총공사비로 약 1,241억원 규모의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조합은 2020년 6월 총회를 개최해 공사계약금액을 3.3㎡당 564만원으로 상향하는 안건을 통과시켰고,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신청했다. 당시 부동산원은 최초 공사계약금액에서 약 283억원이 증액된 1,523억원이 적정 공사비라는 검증결과를 보냈다.
하지만 조합은 2022년 7월 다시 총회를 개최해 약 1,662억원으로 공사비를 재차 인상하는 의결을 거쳤고, 2023년 4월 공사계약금액을 160억원 증액하는 총회 결의를 진행했다. 또 조합은 총회에서 2023년 5월 관리처분변경 안건과 최종 공사비를 약 1,897억원으로 확정하는 안건을 상정해 통과됐다.
이에 대해 원고는 조합의 도급계약변경이 법령상 강행규정인 공사비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은데다, 정비사업비가 10% 이상 증가했음에도 조합원 2/3 이상의 찬성을 받지 못해 무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과 마찬가지로 조합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우선 재판부는 조합의 도급계약변경이 공사비 검증 대상이지만, 총회 결의를 무효로 판단할 만큼 중대·명백한 하자로 볼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2023년 5월 총회에서 공사비를 약 176억원 증액하는 결의가 이뤄진 것은 2022년 7월 총회에서 의결된 공사계약금액과 비교하면 10% 이상인데다, 생산자물가상승률을 공제하더라도 3%를 초과했다”며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 기준인 공사비 검증 완료 이후 공사비 증액비율이 3% 이상인 경우에 해당해 검증기관에 공사비 검증을 요청했어야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도시정비법에는 공사비 검증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조합이 공사비 검증을 요청해야 한다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지만, 공사비 검증 요청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변경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취지의 규정을 찾아볼 수 없다”며 “공사비 검증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 절차도 마련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사비 검증을 거치지 않은 조합 임원 등을 형사처벌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의 별도의 제재규정을 두고 있지도 않다”고 설명했다.
즉 법령에서 사업시행자가 공사비 검증결과가 나온 이후에야 변경계약 체결이나 관리처분계획 등에 관한 결의를 진행할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해석한 것이다.
나아가 재판부는 정비사업의 경우 공사비 변경이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공사비 검증 절차를 반복할 경우 되레 조합원의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판부는 “공사도급계약의 특성상 정비사업의 공사비는 준공시점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변경되는 경우가 많다”며 “조합원들이 공사비 증액 규모와 내역 등에 대해 검토한 다음 조합원들의 총의로 공사비 증액에 관한 결의를 했음에도 단지 공사비 검증절차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결의의 효력을 일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오히려 불필요한 절차의 반복 또는 정비사업의 지연으로 인한 조합원들의 재산적 손해가 추가적으로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공사비 증액 결의를 위한 조합원 2/3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는 원고 측의 주장도 배척했다. 특정정족수 적용은 공사비 10% 이상 증액이 아닌 정비사업비가 10% 이상 증가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공사비 증액 비율이 10.53%에 해당해 조합원 2/3 이상의 동의를 얻었어야 하는데도 특별가중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해 무효라고 주장한다”며 “도시정비법상 총회에서 조합원 2/3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대상은 사업시행계획서의 작성·변경과 관리처분계획의 수립·변경 시 ‘정비사업비가 10% 이상 늘어나는 경우임이 법문상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공사비 증액비율이 10% 이상에 해당하는 공사도급계약 변경에 관한 결의 안건의 경우에도 공사비 증액 비율이나 경위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언제나 위와 같은 가중된 의결정족수가 요구된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조합원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실질적인 변경에도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워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