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중림동 398번지 일대 재개발이 조합정관 변경에 실패하면서 업무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조합이 서울시의 권고에 따라 표준정관을 토대로 정관 변경안을 마련했음에도 비대위의 반대로 총회 통과가 무산된 것이다. 이에 따라 수차례 개정된 법률과 동떨어진 조합정관을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만큼 재개발에 난항이 예고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중림동 398번지 일대 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지난달 23일 임시총회를 개최해 조합정관 변경 안건을 상정했지만, 개표 결과 부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합정관 변경은 지난해 11월 서울시가 마련한 ‘공공지원 정비사업 조합 표준정관’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른바 비상대책위원회가 정관 변경에 대한 반대 활동에 나서면서 조합원 2/3 이상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
실제로 비대위는 임시총회에 앞서 조합원들에게 조합정관 변경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의 우편물을 보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조합원 제명 요건은 완화하는 반면 임원 해임 요건은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주장했다. 즉 조합정관 변경은 조합 집행부의 권력을 강화하고 조합원 견제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우선 조합원 제명 요건의 경우 현행 정관에는 ‘10억원 이상의 구체적인 손해’라는 기준이 있었지만, ‘막대한 재산상 손해’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변경됐다는 주장이다. 또 조합원 제명 의결 정족수도 현행 ‘조합원 2/3 찬성’에서 ‘출석 조합원 과반수 찬성’으로 대폭 완화됐다는 것이다.
임원 해임 요건도 구체적인 귀책사유가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제한했다는 주장이다. 또 해임총회 비용도 조합에 청구할 근거가 삭제되어 사실상 조합원의 임원 해임권을 원천 봉쇄하는 변경안이라고 해석했다.
문제는 비대위가 주장하는 정관 규정들은 조합이 서울시의 표준정관을 그대로 옮긴 내용이라는 점이다. 즉 조합이 해당 규정을 임의로 변경한 것이 아닌 표준정관 자체 규정이라는 것이다.
조합의 정관 변경안에 따르면 임원의 해임과 관련한 규정은 서울시 표준정관의 내용을 그대로 사용했다. 조합임원이 전원 해임된 경우에 한해 구청장이 도시분쟁조정위원회를 개최해 조합장 직무대행자를 정하고, 직무대행자는 조합 운영과 정상화를 위한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을 뿐이다.
조합원 제명 관련 규정도 마찬가지다. 서울시의 표준정관 규정을 단 한글자로 변경하지 않은 채 그대로 변경안에 담았다. 특히 비대위가 주관적인 기준이라는 주장하는 ‘막대한 재산상 손해’도 조합원이 고의로 불법행위를 저지르거나, 의무를 고의로 이행하지 않아 발생하는 경우로 한정된다.
즉 비대위의 주장대로 조합 집행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 조합원을 자의적으로 축출할 수 있을 길을 열어주는 위험한 조항으로 보긴 힘들다는 것이다. 비대위의 주장대로라면 서울시가 앞장서서 조합 집행부의 권력을 강화하고, 조합원 견제를 무력화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정관 변경안이 부결됨에 따라 현행법령과 맞지 않은 현행 정관을 계속 사용하면서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조합의 정관은 지난 2003년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가 배포한 재개발 표준정관을 토대로 작성된 만큼 현행법과 맞지 않는 규정들이 다수 있기 때문이다. 법제처에 따르면 도시정비법은 지난 2003년 제정 이후 현재까지 타법 개정을 포함해 무려 122회나 개정 작업이 이뤄진 상태다.
한 법률전문가는 “서울시의 공공지원 정비사업 표준정관은 지난 2019년 도시정비법이 개정되면서 보급 권한이 광역지자체로 이양됨에 따라 현행법령에 맞게 제정된 것”이라며 “정비사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갈등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만큼 조합에게만 유리한 규정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합이 재개발·재건축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조합정관이 법령 내용과 합치해야 한다”며 “안정적인 조합 운영을 위해서라도 현행법에 맞는 조합정관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