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정비사업 청산 조합을 조사한 결과 9,000억원 규모의 유보금이 사용됐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장기간 청산을 지연시켜 월급을 받는 이른바 ‘청산연금’으로 사라졌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청산을 위한 정상적인 지출을 부정 사용한 것처럼 확대 해석했다는 반발이 나온다.
▲김영호 의원 “전국 청산조합 327곳, 청산 지연 탓에 잔여자금 9,000억원 이상 사용”=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1일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 받은 ‘전국 17개 시·도 청산조합 현황 자료’를 공개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월 기준 전국의 청산조합은 327곳인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청산조합들의 해산 당시 잔여자금은 총 1조3,880억원 규모이며, 현재는 4,866억원 가량이 남은 것으로 조사됐다.
청산조합이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로 156곳이 청산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해당 청산조합들은 9,583억원의 잔여자금으로 청산업무를 시작했지만, 현재 잔여자금은 2,831억원이다. 해산 당시와 비교하면 약 70.4%인 6,752억원이 소진된 셈이다. 특히 길게는 15년간 청산을 완료하지 않은 조합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도 총 46개의 청산조합이 622억원의 잔여자금으로 청산에 돌입했지만, 현재는 171억원이 남아 약 72.5%가 사용됐다. 대구는 24개 청산조합이 683억원의 잔여자금 중 443억원을 사용했다. 다만 327곳의 청산조합 중 60개 조합은 현재 잔여자금 확인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이번 조사결과 수년간 청산이 지지부진해 9,013억원에 달하는 조합원의 돈이 사라진 셈”이라며 “소송지연 등 고의로 청산을 지연하며 부당하게 쓰인 조합원들의 돈을 환수하고, 정당하게 다시 돌려줄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합 관련 자료 보관 기간 늘리고, 정보공개시스템 구축하는 법안 발의=이에 따라 김 의원은 청산조합에 대한 투명성 강화를 위한 법안도 2건을 발의했다. 지난 18일 청산 관련 자료에 대한 보관기간을 늘리는 법안을 발의한데 이어 지난 21일에는 정보공개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개정안도 제출했다.
우선 청산 관련 자료의 보관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현행법에 따르면 정비사업 시행에 관한 서류·자료 등에 대해서는 정비사업이 완료 또는 폐지된 날로부터 5년간 보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일부 조합들이 청산유보금의 사용 현황과 운영비 지출 내역 등의 세부내역에 대해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채 사업을 종료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정비사업 종료 이후 관련 서류 등에 보관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물론 열람·복사할 수 있도록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또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법안도 내놨다. 현재 추진위원장과 조합은 정비사업 시행에 관한 자료를 인터넷 등에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조합원 등이 열람·복사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조합이 불리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거나, 열람·복사 요청을 거부해 법적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김 의원은 국토교통부장관이나 시·도지사가 조합이 공개해야 하는 서류와 관련 자료를 공개할 수 있는 정보공개시스템을 구축·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업계 “법인세, 용역비, 환급금 등 청산에 필요한 비용 지급… 돈 잔치 결과 아냐”=하지만 업계에서는 청산조합이 잔여자금을 사용하는 것은 정상적인 운영이라고 반박했다. 청산조합은 정비사업의 자산이나 채무 등을 청산하기 위한 업무 진행이 목적인만큼 부당한 자금 사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청산비용은 운영비는 물론 각종 추가 세금이나 환급금, 용역비용 등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해산 당시와 현재의 금액 비교는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재건축 청산을 마친 마포구의 전 조합장은 “청산 과정에서 추가 법인세가 부과되거나 소송 결과로 추가 용역비를 지급해야 하는 등 비용 발생의 원인은 다수 존재한다”며 “물론 청산업무를 위한 운영비용으로도 사용되지만, 사용해야 할 곳에 사용했기 때문에 잔여자금이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조합의 경우에도 해산 때까지 미분양 상가가 남아있어 자산으로 잡혀있었다”며 “청산과정에서 상가가 매각되어 조합원에게 환급해 잔여자산이 대폭 줄었는데 이런 비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 엄정진 사무국장은 “청산조합의 궁극적인 목표는 해산 이후 자산과 부채를 정리해 남은 자금을 ‘0’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잔여자산은 단순히 청산조합의 운영비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법인세 정산분이나 각종 소송 결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 등으로 지급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청산이 진행될수록 잔여자금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며 “해산 당시와 비교해 자금이 줄었다는 이유로 마치 청산조합이 ‘돈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