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하면서 승진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의적 판단에 의해서 말이죠. 책임을 져야하는 자리에 올라 내일을 걱정하면서 위태로운 직장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정년까지 최대한 가늘고 길게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실제로 지난 2023년 5월 잡코리아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임원 승진을 희망하지 않은 이유로 ‘책임을 져야하는 위치가 부담스럽다’는 답변이 43.6%를 차지해 1위에 올랐습니다. 글로벌 채용 컨설팅 기업 로버트 월터스도 지난해 하반기 조사한 응답자의 52%는 중간 관리자로의 승진을 회피하는 의도적 언보싱(Conscious unbossing)으로 파악했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정비업계에서도 포착되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승진을 포기하는 직원들이 늘고 있는 것인데요. 대규모 감원사태에서 비롯된 지위불안 여파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됩니다.
먼저 감원사태는 고금리와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영업이익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탓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대형사들은 조직개편에 나서는 한편 심각하게는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 등에 대한 조치를 동반하고 있습니다.
구조조정 대상은 책임을 져야하는 위치에 있는 부장급 이상이 대부분입니다. 결론적으로 책임 져야하는 자리만 아니면 ‘롱런’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승진 기피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승진을 하지 않으면 “정년까지는 버틸 수도 있겠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택한 셈이죠.
그렇다면 어떠한 막중한 책임을 지기에 승진을 기피할까요. 정비사업의 경우 당연히 수주전이 될 것입니다.
수주 경쟁에서 각 건설사들은 트렌드, 조합원 성향, 특화설계, 위법성, 사업성 등에 대한 분석에 나섭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직원들과 공유합니다. 이때 부장급 이상 총괄 담당자는 자사에 유리한 수주 방향을 설정하고, 모든 임직원은 이를 토대로 분주하게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수주 여부가 회사 이익과 귀결되는 만큼 총괄하는 담당자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뜨거운 수주전이 펼쳐지는 곳은 여론의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그만큼 홍보 차원에서도 후속 사업장 진출을 위한 요충지로 작용하는 셈이죠. 수주 실패 시 임원들이 주요 보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임원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다른 이유로는 ‘학습효과’를 꼽을 수 있습니다. 실적 악화 영향에 따라 예상보다 빨리 임원직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는 점을 직원들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것이죠.
아름다운 퇴장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직원들의 인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승진 기피현상은 안정적인 직장생활이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대형사들의 경우 임원들의 나이는 더 젊어졌습니다. 일부 대형사들은 새 수장으로 1970년대생 인사로 세대교체를 단행했습니다. 젊은 리더십을 통해 건설업 침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인사조치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70년대 생들의 은퇴시기가 빨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한 대형사 관계자는 “건설업계 전반에 임원승진 기피 현상이 확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요즘에는 은퇴시기를 두고 걱정할 수밖에 없는 책임감 있는 자리에 오르기보다는 직급은 낮더라도 오래 버틸 수 있는, 다시 말해 만기제대를 원하는 직원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정비사업 협력업체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대형사들의 대대적인 인사조치가 정비업계 장기침체 등 위기감에서 비롯된 만큼 협력업체들 역시 재정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따라서 상당수 협력업체들은 감원을 단행하면서도, 남아있는 직원들에 대한 급여를 걱정해야하는 처지에 놓여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인사목표는 과거에도 지금도 명확합니다. 누구를 그 자리에 앉혀야 최고의 성과를 지속해서 낼 수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물론 대외적인 시장경기 상황도 인사조치에 있어서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시대가 변화하고 있는 만큼 정비업계도 인사 대상의 생애주기와 가치관, 시장상황 변화 등을 감안한 새로운 인사관리 방식을 찾아야할 시기입니다.
임원이 되면 몸이 망가지거나 책임 부담감에서 비롯된 스트레스 가중 등 다수의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하는데, 이를 탈피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필요해보입니다.
이혁기 기자 lee@aru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