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 경기 불황 속 어두운 그림자는 동반침체가 우려되는 정비사업에도 드리워지고 있다. 조합과 시공자는 각각 서로가 살 길을 모색하는데 집중하고 있고, 그만큼 정비사업 트렌드도 변화하고 있다. 조합과 시공자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키워드는 크게 3가지로 분된다. 구애 혹은 쟁취, 그리고 결별이다.
명확해지고 있는 부분은 서울과 지방의 온도가 점점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은 시공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지면서 건설사에 ‘구애’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반면, 서울 한강변 등 일부 사업장들은 뜨거운 경쟁을 예고하는 등 ‘쟁취’의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시공자를 선정한 곳들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조합과 시공자 간에 공사비 등을 둘러싼 대립 관계가 지속되다보니, 결국은 결별을 택하고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하는 사업장들이 늘고 있다.
지방은 시공자 찾기 어려워… 조합이 ‘구애’의 손길
정비사업 침체 우려에 지방 정비사업장들이 비상이다. 심지어 일부는 시공자에 구애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시장 경기가 활황일 당시 시공자 선정에서 펼쳐졌던 ‘경쟁’은 이제 일반화의 오류로 인식될 만큼 더 이상 당연한 수순이 아닌 게 됐다.
특히 지방은 수의계약 대세론이 불거지고 있는데, 이마저도 추진이 가능하다면 다행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가로주택 등 소규모정비사업의 경우 수의계약으로 전환해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사업장들이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사비에 대한 ‘눈높이’ 차이다. 인건비와 원자재가격 상승에 건설사들은 공사비를 올릴 수밖에 없는 반면, 조합은 부담감에 보수적으로 책정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인구수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도권 집중 현상이 발생하다보니, 지방은 미분양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시공자들이 선뜻 수주에 나서고 있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실제로 미분양 대책비를 요구하는 사업장도 적지 않다. 사업조건으로 미분양을 대비해 별도의 비용 책정을 조합에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비용은 분양시점에서 홍보, 할인 등을 위해 사용한다. 다시 말해 미분양 최소화를 위해 조합이 비용을 부담하는 셈이다. 책임분양 등 시장 경기가 활황일 때 건설사가 제시했던 조건과는 상반된 조건이다.
될 곳은 돼… 건설사들, 이곳만큼은 반드시 ‘쟁취’해야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들은 사정이 다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다보니 지방에서 발생하는 미분양 등에 대한 걱정이 없다. 이렇다보니 수의계약이 주를 이루면서도 한강변, 강남권 등 수요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장은 건설사들이 반드시 ‘쟁취’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수주 경쟁에 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분담금 부담 여력이 되는 사업장들은 조합과 시공자간에 ‘공사비’ 눈높이 차이를 좁힐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 간에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쟁이 펼쳐지는 사업장에서는 마감재 고급화 등을 원하는 조합원들의 욕구충족을 위해 제안한 특화설계가 수주전에서 승부처로 작용하고 있다.
즉, 단지 고급화를 원하는 조합원 바람이 건설사들에게는 공사비 상향조정의 명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초 수주전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용산구 한남4구역 재개발사업장의 경우 특화설계 등 사업 조건이 승부를 갈랐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경쟁사를 제치고 시공자로 선정된 상황이다. 조합이 책정한 공사비는 3.3㎡당 940만원으로, 한남뉴타운 내 가장 높은 금액으로 파악됐다.
공사비 둘러싼 대립 후 ‘결별’… 새 시공자 찾아도 부담은 여전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기존 시공자와의 계약해지도 시장경기 불황에서 비롯됐다는 의견이 나온다. 공사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시공자와의 결별을 택하는 조합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시공자로서는 원자재가격에 인건비 상승 등을 감안한 공사비 상승조정을, 조합은 부담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보수적인 책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면 부담 증가에 따른 조합원들의 비난의 화살은 집행부를 향할 수 있고, 결국 선택지는 계약해지밖에 없다는 게 조합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조합원 부담 절감을 확신할 수만은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상당수 사업장들이 계약 해지 후 기존 시공자가 지위확인 및 손해배상 등의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소송 결과 손해배상으로 많게는 수백억원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업장들도 포착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새로운 시공자를 선정하더라도 공사비가 낮아지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원자재가격과 인건비 상승에 대한 부담은 새로운 시공자에게도 작용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시공자 선정 후 실질적인 착공까지는 수년이 흐르는데, 그동안 원자재가격과 인건비 등이 오르면서 기존에 책정한 공사비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공사비를 둘러싼 의견차를 좁히지 못할 경우 일부는 계약해지 후 새로운 시공자를 선정하고 있지만, 의도했던 부담 절감은 기대하기 힘든 게 일반적”이라고 밝혔다.
이혁기 기자 lee@aru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