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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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에 약 1조8,000억원의 수주고를 올려 ‘정비사업·리모델링 1위’에 오른 DL이앤씨가 잇단 계약해지로 체면을 구기고 있다. 올해에만 벌써 7곳의 사업장이 계약을 해지해 무려 2조원에 달하는 수주금액이 증발했다. DL의 고급브랜드인 ‘아크로’가 수주에 효자역할을 하고 있지만, 계약해지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DL은 올해 상반기에만 정비사업과 리모델링 6곳을 수주하면서 이미 1조 클럽에 가입했다. 공사비 5,500억원 규모의 부산 우동1구역을 시작으로 인천 용현3구역 가로주택과 군포 산본우륵 리모델링, 시흥 거모3구역 재건축, 수원 신성신안쌍용진흥 리모델링, 산본 율곡아파트 리모델링 등을 수주했다. 또 최근에는 GS건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대전 도마·변동12구역 재개발 시공권을 확보해 2조원 가량의 수주고를 확보한 상황이다.

하지만 DL을 시공자로 선정한 구역들이 잇따라 계약해지를 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전국 7곳의 현장에서 공사비와 브랜드 등에 대한 갈등을 겪으면서 해지를 결정한 것이다. 이미 해지된 계약 규모만도 약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 3일 서울 중구 신당8구역 주택재개발조합은 조합총회를 개최하고, 시공자인 DL과의 계약해지 안건을 통과시켰다. 지난 2019년 4월 시공자로 선정된 지 약 2년여 만에 계약을 해지하게 된 것이다.

신당8구역이 DL과의 계약을 해지하게 된 이유는 공사비와 아파트 브랜드에 대한 갈등이 주요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DL은 수주 당시 ‘e편한세상’ 브랜드를 제안했지만, 조합에서는 고급브랜드인 ‘아크로’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DL이앤씨는 계약조정과 브랜드 적용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조합 내부에서 시공자 교체로 방향을 잡았다.

이보다 앞서 지난 5월에는 광주 광천동 재개발구역이 DL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광천동 역시 고급브랜드인 ‘아크로’ 적용을 요구했지만, DL이 사실상 거부하면서 해지에 나섰다. 최근 DL 측이 제기한 총회결의 효력정지 가처분이 받아들여지면서 일단 시공자 지위를 유지하게 됐지만, 조합은 다시 해지를 결의한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공사계약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 △인천 주안10구역 △부산 범천4구역 △서금사5구역 △청주 사직1구역 △마산 회원2구역 등도 줄줄이 계약을 해지한 바 있다.

이에 따라 DL은 고급 브랜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 부동산 업체가 ‘아파트 브랜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DL의 ‘아크로’는 아파트 고급브랜드 1위를 기록했다. 올해 초 수주한 우동1구역에도 아크로 브랜드를 제안해 효과를 봤다. 고급 브랜드로 인해 기업의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아크로는 일정 금액 이상의 분양가격과 공사비 등이 충족되는 강남 등 일부 단지에 적용하는 브랜드다. 희소성이 곧 무기라는 의미다.

문제는 동일한 건설사를 선정하고도 아크로 브랜드를 달지 못하는 조합이다. 조합 입장에서는 일반 브랜드를 적용할 경우 고급 브랜드보다 상대적으로 아파트 시세 상승 폭이 줄어들어 ‘역차별’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DL 입장에서는 고급 브랜드가 양날의 검이 되는 셈이다.

지방의 한 조합 관계자는 “고급 브랜드가 아닌 일반 브랜드를 사용할 경우 상대적으로 저급아파트라는 인식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지방에서도 조합원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상황인 만큼 고급 브랜드를 요구하기 때문에 조합 입장에서는 시공자 교체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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