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시 내 재개발·재건축구역에서 추진위원회 구성을 생략한 채 곧바로 조합을 설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른바 ‘조합 직접설립 제도’를 적용하는 구역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정비사업은 추진위를 구성한 후 협력업체의 도움을 받아 조합설립인가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협력업체로부터 사업초기 자금 대여가 가능한데다, 전문성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016년 시가 조합 직접설립 제도를 도입한 이후로 추진위 일변도의 조합설립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실제로 문래진주와 남서울무지개, 신정수정아파트 등이 조합 직접설립 제도를 통해 본격적인 재건축에 돌입했다.

또 청량리 미주를 비롯한 6~7개 현장도 조합 직접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추진위 생략에 따른 사업기간 단축과 공공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인데다, 조합설립 직후에는 협력업체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조합 직접설립 제도의 장·단점을 충분히 검토해 구역 상황에 맞는 사업방식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하고 있다.

[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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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 직접설립 제도, 추진위 구성없이 주민협의체가 직접 조합설립


조합 직접설립 제도는 정비구역 지정 후 추진위원회 승인을 거치지 않고 주민협의체 주도로 조합을 설립하는 제도다. 지난 2016년 도입됐고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31조제4항, 서울특별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 제82조제1항에 근거한다.

조합 직접설립 제도는 토지등소유자의 일정 비율 이상이 동의하면 추진위원회 구성을 생략할 수 있다. 더불어 사업 초기 각종 공공지원 혜택을 받는다. 공공지원으로 조합을 직접 설립하기 위해서는 구역 내 토지등소유자의 50% 이상이 추진위 구성 단계 생략에 동의해야 한다.

이는 정비계획 수립 및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동의서를 징구할 때 함께 조사한다. 참고로 정비구역 지정 후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한 법정 동의율은 토지등소유자의 과반수 동의다.

주민협의체 주도로 운영할 시 경험, 실무능력이 미약할 수 있기 때문에 원활한 사업 진행을 위해 공공이 사업 추진을 돕는다. 각 구청장이 법·제도적 절차, 행정·실무 등을 안내하고 지원한다. 아울러 공공지원자가 조합설립 과정에 참여해 주민들이 원활한 조합설립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구체적으로 전문가 컨설팅부터 설계·회의·감정평가 등 조합설립에 관련한 비용과 외부전문가의 행정업무 지원 등이다.

서울시는 직접설립을 위한 지원 예산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공공지원실행팀 관계자는 “토지등소유자 동의 50% 이상을 받으면 직접설립 추진이 가능하고, 75%가 넘으면 공공지원을 위한 보조금 등을 신청할 수 있다”며 “현재 정비사업 지원을 위한 부문에는 예산 자체가 충분해 지원이 크게 문제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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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 직접설립 기간 단축·공공의 초기 사업비 지원은 장점


직접설립 제도의 장점은 무엇보다 추진위 승인 과정을 생략하면서 사업 기간 단축이 가능하다는 점과 초기 자금 지원이다.

실제로 조합 직접설립 제도가 신설된 뒤 처음 적용했던 문래진주아파트와 남서울무지개아파트는 정비구역 지정부터 조합설립인가를 받기까지 각각 2년 1개월, 1년 1개월이 걸렸다. 뒤이어 조합을 설립한 신정수정은 불과 9개월이 소요됐다. 서울시가 집계한 정비구역 지정~조합설립인가 평균 소요기간인 △재건축 3년 9개월 △재개발 3년 2개월 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다.

아울러 시는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데 소비되는 평균 2억원의 운영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총회, 인건비, 업무추진비 등 순수 소모비용을 모두 지자체가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또 공공이 지원하는 만큼 동의서를 징구할 때도 비교적 수월하다는 평가다. 공공지원자와 외부전문가가 사업 초기단계부터 참여해 컨설팅 등 지원 과정을 거치면서 주민들의 이해와 신뢰를 쌓기 용이하다. 

조합 직접설립 제도를 적용해 최초로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문래진주의 조충현 조합장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조합설립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받아 큰 도움이 됐고, 초기 단계 사업 진행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제도라는 평이다.

조 조합장은 “구청에서 1년 간 회의비용, 감정평가, 설계 등 조합설립에 관련한 비용을 지원해 사업을 순차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며 “돌이켜봤을 때 조합 직접설립 제도는 좋은 선택이었고 초기 사업장들에게 추천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2~3년의 사업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시의 분석에 통계상 오류가 존재한다는 진단도 나온다. 시가 통계로 든 평균 1년 3개월의 기간 만에 조합을 설립한 사례는 문래진주, 남서울무지개, 신정수정 등이다. △문래진주 160세대 △남서울무지개 639세대 △신정수정 220세대 등 모두 비교적 소형 단지들이다. 세대수가 적은 만큼 동의서 징구 속도 등 조합설립 과정이 짧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표=홍영주 기자]
[표=홍영주 기자]

▲주민의사 반영 어려운 구조… 조합설립 직후엔 집행부가 독자 생존해야


직접 설립제도의 단점은 인가 후 협력업체 계약이 종료되면서 집행부만 오롯이 남아 사업 진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점과 주민협의체 단계에서 소유자 의견 반영이 어렵다는 점이다.

문래진주와 비슷한 시기에 조합을 설립한 남서울무지개의 김원철 조합장의 경우 직접설립 제도의 인가 과정 및 이후의 고충에 대해서 의견을 냈다. 조합장과 집행부가 정비사업에 대해 상당한 지식과 정보를 가진 경우에는 추천할 만하지만, 다소 경험이나 이해도가 부족한 경우 인가 후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접설립 제도를 통해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직후에는 협력업체의 부재라는 문제를 안는다. 조합 직접설립 시 관에서 지원하는 협력업체의 지원은 조합설립인가까지이기 때문이다. 인가 직후 조합장, 이사 등 소수의 집행부 구성원만이 남는 것이다. 인가를 받으면 1달 이내 법인등기가 의무화된다. 이에 따른 조합사무실 마련부터 향후 사업절차 진행 등 다양한 문제가 산재해 있어 추진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또 주민협의체를 구성했을 때 토지등소유자들의 의견 반영이 어려운 부분도 단점으로 꼽힌다. 조합 직접설립을 위한 기관은 주민협의체가 맡는다. 주민협의체의 위원장은 구에서 선정한 외부 전문가가 담당하고, 토지등소유자는 부위원장 또는 위원으로만 활동할 수 있다. 이 때 부위원장에게는 주민협의체의 회의 개최 권한조차도 없다. 토지등소유자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어야 할 사업임에도 주민협의체에서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구조인 것이다.

김 조합장은 “정비사업에 대해 능통한 조합장이 인가 후 직면하게 될 다양한 어려움을 정보와 지식을 통해 커버할 수 있다면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직접 주민협의체 부위원장을 맡고 진행해본 결과 토지등소유자들의 목소리가 담기기는 다소 어려운 구조였다”고 말했다.

이호준 기자 leejr@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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