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관련 분쟁에서 가처분은 핵심적인 분쟁 해결 수단이 되고 있다. 정비사업의 주요한 대목과 관련한 총회, 대의원회 등을 앞두고 어김없이 개최금지가처분 등의 신청이 이루어지고, 대개 1~2주 안에 그 승패가 결정된다. 특히 개최금지가처분의 경우 채권자는 보통 총회를 앞두고 1~2주 전에 신청서를 접수하고, 법원은 신청서를 받은 즉시 심문기일을 지정하며, 심문기일 이후 2~3일간의 공방을 거친 다음 총회 전날 정도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처럼 급박하게 진행되는 가처분 사건에서, 대부분의 채무자는 법원으로부터 신청서를 송달받는 즉시 소송대리인을 선임하여 답변서를 준비하여 심문기일 전에 제출한다. 그런데 간혹 채무자가 법원이 송달한 가처분 신청서 부본 및 심문기일통지서의 송달 자체를 회피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기본적으로 법원은 채무자의 방어권을 충실히 보장하여 양측의 소명을 충분히 들어본 후에 비로소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이에 불과 1~2주 만에 결정이 내려지는 개최금지가처분의 특수성을 역이용하여, 의도적으로 가처분의 신청서 등의 송달을 회피함으로써 법원이 송달 없이 쉽게 가처분 인용 결정을 하지 못하게끔 하는 전략인 것이다.
필자는 때에 따라 채권자를 대리하기도, 또는 반대로 채무자를 대리하기도 하지만, 위와 같은 전략은 결코 권하지 않는다. 특히 주민등록초본상 여전히 주소지가 신청서의 송달주소로 되어 있음에도 폐문부재나 이사불명 등의 방식으로 신청서 등 송달을 회피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고 본다. 어째서 그러한가?
우선, 민사집행법 제304조는 “제300조제2항의 규정에 의한 가처분의 재판에는 변론기일 또는 채무자가 참석할 수 있는 심문기일을 열어야 한다. 다만, 그 기일을 열어 심리하면 가처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정하고 있다.
즉, 심문기일을 거쳐야 할 시 가처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사정이 있을 경우 심문기일을 열지 아니하고도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을 발령할 수 있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
나아가 법원은 가처분 명령의 발령에 있어 공시송달 등의 절차를 거칠 경우 가처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 마찬가지로 가처분 신청서 등의 채무자에 대한 송달 없이도 가처분 명령의 발령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은 최근 “이 사건 가처분신청서가 채무자에게 송달되지 아니하여 채무자가 심문기일에 출석하지 아니한 사정은 인정되나, 이 사건은 심문기일을 재차 열어 추가적으로 심리하면 가처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므로 가처분결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민사집행법 제304조 단서 등을 참작하여 그대로 심문기일을 종결하고 결정한다”라고 그 이유를 설시하며 채권자가 신청한 개최금지가처분을 인용하였다.
나아가 수원고등법원도 최근 민사소송법 제304조 단서를 근거로 하여 심문기일을 열지 아니하고 정비사업조합의 총회결의의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하였다(인천지방법원, 수원지방법원 등도 모두 같은 취지로 판시하였음).
특히, 서울중앙지법은의 최근 결정은 눈여겨 볼만하다. 서울중앙지법은 ‘집행관이 채무자의 주민등록초본상 주소지에 방문하여 신청서등의 송달을 시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사를 갔다고 진술하자, 채무자가 총회 개최를 위하여 서면결의서를 전송받던 팩스번호 및 휴대전화 번호로 재차 송달을 시도하였음에도 결국 채무자가 심문기일에 출석하지 아니한 사안’에서 다음과 같이 판시하면 개최금지가처분 인용결정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 사건 가처분 신청서 부본 등이 채무자에게 송달되지 아니하였고, 채무자가 심문기일에 출석하지 아니하였으나, 이 법원이 채무자의 주민등록초본에 기재된 주소지로 신청서 부본, 심문기일소환장 등의 집행고 송달을 시도하였고 앞서 본 바와 같이 채무자가 그 과정에서 집행관에게 서류 수령 거부의사를 명확히 하면서 송달물의 수령을 거부한 점, 이 사건 총회 개최가 임박한 점, 이 사건 가처분의 목적과 분쟁의 특성 등을 고려하여 민사집행법 제304조 단서 등의 취지에 따라 그대로 심문을 종결하고 위와 같이 결정한다”라며 채무자에 대한 송달 및 심문기일 출석 없이 가처분 인용결정을 발령하였다.
법원이 이와 같이 채무자에 대한 송달 및 심문기일 출석 없이 가처분 인용 결정을 발령한 것은 결국 채무자의 의도적인 송달 회피가 오히려 채무자 스스로 방어권을 포기한 것으로 비추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채무자가 강행하고자 한 총회 결의의 외관이 형성된다면 절차적 하자에 따른 중대한 파급효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었을 것이나, 이와 별개로 법원의 적법한 송달에 대한 의도적인 회피는 결코 좋은 인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설령 운 좋게 개최금지가처분신청이 기각되더라도 결국 동일한 재판부에서 이어질 효력정지가처분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지는 점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전략을 권하지 않는다는 필자의 조언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