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정비사업에서 가장 큰 이슈는 ‘공사비’였다. 시공사는 대외적으로 코로나19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전쟁 등이 연이어 발생하며 원자재 가격이 폭등했고, 대내적으로 원자재 수급, 노무비 증가 등으로 인해 공사원가가 크게 증가해 공사비의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한다. 시공사는 급등한 공사원가를 이유로 공사대금의 증액을 요구했고, 조합은 악화된 사업성 등을 이유로 이를 거부하며 갈등이 깊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법원은 2024. 4. 4. 물가변동에 의한 공사대금 조정 배제특약의 효력을 부인한 부산고등법원 2023. 11. 29. 선고 2023나50434 판결에 대해 심리불속행 기각을 선고했다. 위 판결이 보도된 이후 공사비 협상에 들어간 조합은 위축됐고, 시공사는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그렇다면 정비사업 조합이 시공사와 체결한 공사도급계약에서 기재된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무효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효라고 보기 어려워 보인다.
사실관계부터 비교해보자. 부산고등법원 2023나50434 판결의 사실관계를 보면, 교회 A는 교회 건물의 증축공사를 시공사 B에 맡기면서 공사대금 약 11억원으로 하는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했다. 이때 사용된 계약서는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 일반조건인데, 여기에 양 당사자들은 특약사항으로 ‘계약체결 후 견적 착오, 물가 상승, 인건비 상승 등으로 도급금액을 증액, 설계변경 또는 해약 요구할 수 없다’라고 정했다.
이후 시공사 B는 교회 A의 사정으로 착공이 늦춰졌고, 그 사이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공사비의 증액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회 A는 위 특약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교회 A는 계약조건 위반을 이유로 도급계약의 해제를 주장하며 기지급한 선급금 등의 반환을 청구했다. 교회 건물을 증축하기 위해 약 11억 원의 공사대금을 지급할 것을 약정한 위 사안과 대규모 공동주택을 건설하기 위해 수백억원, 수천억원에 달하는 공사대금 지급을 약정한 정비사업의 사안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또 위 사안에서 부산고등법원은 ‘착공이 8개월 이상 늦추어지는 사이에 원자재인 철근 가격이 2배가량 상승했는데, 수급인인 피고 B의 귀책사유 없이 원고 측 사정으로 착공이 연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원자재 가격의 대폭적인 인상을 도급금액에 전혀 반영할 수 없다면 이러한 건설공사 도급계약의 내용은 계약금액의 변경을 상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아니함으로써 수급인인 B에게 현저히 불공정한 경우에 해당한다.’라고 판시했다. 이는 착공 지연에 시공사의 귀책사유가 없었고, 원자재 상승이 규모가 작은 건설업체가 감당하기에 다소 지나쳐 보인다는 구체적인 사정까지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법리적인 부분을 살펴보자. 부산고등법원은 위 사안에서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는 현저히 불공정한 거래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강행규정이라고 판시하며, 사안의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위 조항 위반으로 무효로 판단했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제5항은 ‘건설공사 도급계약의 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 부분에 한정하여 무효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어 동조항 제1호는 ‘계약체결 이후 설계변경, 경제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의 변경을 상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아니하거나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경우’를 정하고 있다.
이를 강행규정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부인하기 위해서는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에 해당할 것을 요건으로 한다. 이는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하라는 취지이므로 개별 사안에서의 당사자의 지위, 계약 체결 경위, 계약의 구체적 특성, 계약이행에 필요한 물품의 가격 추이 및 수급 상황, 경제적 변동에 따른 위험의 합리적 분배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해 판단함이 타당하다.
더욱이 사적자치와 계약자유의 원칙상 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해 체결된 특약의 효력을 함부로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에 해당하는 특별한 사정이 쉽게 인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비사업의 경우 시공사를 선정하고 바로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가계약 체결 후 본 계약 체결을 위한 협상의 과정을 거쳐 본 계약 체결에 이르게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계약 조항의 변경과 계약 금액의 변동에 관한 협의가 여러 차례 이루어진다는 특수성이 있다. 또 정비사업에 참여하는 대형 건설사의 경우 원자재의 수급이 비교적 용이한 점을 고려하면 정비사업 조합이 시공사와 체결한 공사도급계약의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시공자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특약이라고 보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한편 위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된 이후 서울고등법원 2025. 1. 8. 선고 2024나2029879 판결은 ‘건설공사비지수가 99.34가 126.05까지 상승한 점에 비추어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에 따라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무효로 볼 여지가 있다’는 취지의 판시를 한 바가 있으나 해당 판결에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 여부는 주요한 판단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여전히 다수의 하급심들은 사적자치와 계약자유의 원칙상 그와 같은 계약 내용의 효력을 함부로 부인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24. 9. 11. 선고 2022가단241830 판결,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2024. 9. 26. 선고 2023가합101597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10. 16. 선고 2022가합508672 판결, 수원지방법원 2024. 11. 28. 선고 2021가합29811 판결 등).
즉 부산고등법원은 위 사안에서 특정 원자재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가운데 도급인의 사정으로 인한 착공 연기가 이루어진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여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부정한 것으로 보인다. 위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고 하더라도 공사도급계약에서 기재된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모두 일률적으로 무효라고 볼 수는 없으며 위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지 아니한다면 사적자치와 계약자유의 원칙상 물가변동 배제특약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