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의 운영과 관련하여 조합임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특히 조합장은 대외적으로 조합을 대표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본다면 대통령의 지위에 견줄만하다.

이사들 역시 조합장과 함께 이사회를 구성하여 집행행위에 참여할 뿐 아니라 대의원회와 조합총회에 부의할 안건을 사전심의 하는 등 조합의 의사결정에 깊숙이 관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조합집행부의 지위가 이처럼 막강하다 보니 그 지위를 둘러싼 갈등도 그만큼 빈번하다. 조합집행부의 직무가 과연 법과 정관이 정한 바대로 적정하게 이루어지는지를 감시하는 감사 제도를 설치하여 두고 있지만 상근직이 아니어서 집행부의 업무집행을 제대로 감시할만한 시간이 여의치 않을 뿐 아니라 전문성도 충분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조합집행부의 중요성과 감사제도를 통한 견제의 한계를 감안하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조합임원으로 선출되는 자의 자격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선임된 이후라도 도시정비법 위반으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나 일반 범죄로 집행유예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그 직을 박탈하고 있다. 지위의 중요성에 비례하여 국가공무원에 준하는 고도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형사처벌을 기준으로 조합임원 지위에 선임되는 것을 막거나 그 지위를 사후에 박탈하는 것은 극단적 경우를 대비한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다. 오히려 조합집행부를 직접 견제할 수 있는 보다 효율적인 수단은 직접 민주주의 이념에 기반하여 도입된 소수조합원의 조합임원 해임총회제도이다. 해임총회제도는 조합임원의 형사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소수조합원이 직접 총회를 소집하여 조합집행부의 해임여부를 물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한 조합집행부 견제수단이다. 

해임총회와 관련하여 해임의 대상이 된 기존 조합집행부 측에서 가장 억울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바로 ‘해임사유’다. 정관에는 분명 ‘직무유기 및 태만 또는 관계법령 및 정관에 위반하여 조합에 부당한 손해를 초래’라고 하는 해임사유가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도 해임총회를 주도하는 소수 조합원들이 객관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사유로 해임총회를 소집하여 그 결과 조합임원들이 해임되었다면 해임된 임원들의 억울한 심정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해임된 임원들의 억울한 심정을 ‘적법한 해임사유없이 해임되었다’는 법적 논리로 구성하여 해임결의의 효력을 다투어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만 그러한 항변은 법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 정관상 해임사유는 그저 예시에 불과할 뿐 그러한 사유가 반드시 증거를 통하여 입증되어야만 해임이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특별한 해임사유 없이도 임원은 얼마든지 해임될 수 있는 것이다. 불합리하다고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조합임원과 조합의 관계는 민법상 위임관계이다. 위임관계의 본질이 무엇인가. 바로 ‘신뢰’다. 믿기 때문에 맡긴다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없이 믿음이 사라졌다면 얼마든지 위임관계를 깰 수 있다. 일을 맡긴 사람이 믿을 수 없어 관계를 깨겠다는데 이를 허용 안할 이유가 없다. 조합임원의 해임 문제가 바로 그렇다. 

해임사유가 필요치 않다는 것은 일부 조합원들이 온갖 악의적 유언비어로 조합임원에게 엄청난 비리가 있는 듯 다른 조합원들을 선동하여 속였더라도 해임결의의 법적 효력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일까. 유감스럽지만 그러하다. 기본적으로 법원은 조합원들이 정상적 판단능력을 가지고 적법하게 의사결정에 임하였다는 전제에 서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이 거짓 정보에 현혹되지 않도록 조합집행부가 평소 조합원들의 민심을 어루만지고 다독이며 챙기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한국주택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