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그래픽=홍영주 기자]

# A씨는 지난 2021년 12월 입주하는 조건으로 오피스텔 분양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완공이 3차례나 지연되면서 지난해 12월에야 입주를 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A씨는 신탁사에 계약서에 의거한 지체보상금을 요구했지만, 신탁사는 해당 사업의 주체가 위탁사라는 이유로 지제보삼금 지급을 거부했다. 계약서 특약사항에 지체보상금에 대한 책임은 위탁사에 있다고 명시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신탁사의 아파트 분양계약서 중 상당수가 통지 의무 누락, 책임 회피 등 소비자에게 불리한 내용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신탁사의 정비사업 특례 조항에 대해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 6일 국내 부동산신탁사의 아파트 분양계약서 136개를 모니터링한 결과 상당수가 소비자에게 불리한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12개 부동산신탁사가 사업주체로 전국에 공급한 아파트 분양계약서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자료=한국소비자원
자료=한국소비자원

▲신탁사 분양계약서 71%, 마감재 변경 등 경미한 설계·시공 변경 시 통지 의무 없어=소비자원에 따르면 조사대상 136개 계약서 중 97개(71.3%)가 세대 내부·마감재 등 경미한 사항의 설계·시공 변경과 관련한 통지 의무를 명시하지 않았다. 아파트 표준 공급계약서에는 경미한 사항의 변경을 6개월 이하의 기간마다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신탁사 분양계약서에는 해당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특히 48개의 분양계약서에는 소비자의 이의제기조차 금지하는 내용까지 담겨져 있었다.

실제로 A씨의 경우 아파트 모델하우스와 홍보자료 등을 통해 지하 공간에 2개의 창호가 설치될 예정임을 확인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입주점검에서 지하공간에 창호가 1개밖에 없는 것을 확인해 이의제기를 했지만, 계약서를 통해 경미한 변경에 대한 동의를 받았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거부하는 사례가 있었다.

 

자료=한국소비자원
자료=한국소비자원

▲절반 이상은 사업자 귀책에도 계약 해제·해지 규정 없어=분양계약서의 절반 이상인 71개(52.2%)는 사업자가 계약 이행에 착수한 후에는 계약 해제·해지가 어렵게 하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조사됐다. 표준계약서에는 중도금을 1회 납부하기 전까지는 소비자 사정으로 인한 계약 해제·해지가 가능한 상황이다.

특히 신탁사의 분양계약서에는 사업자의 귀책으로 인한 계약 해제·해지 조항도 포함되지 않아 표준계약서보다 불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표준계약서에는 3개월 이상 입주가 지연되거나 중대한 하자 발생, 광고와 상이한 경우 등 사업자의 귀책에 따른 해제·해지 사유를 다양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불공정한 분양계약서로 인해 계약 해제·해지를 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었다. B씨는 오피스텔 모델하우스에서 상당을 진행한 후 사업자에게 가계약을 안내 받아 1,000만원의 가계약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튿날 변심으로 계약 취소와 가계약금 환급을 요청했지만, 사업자는 이미 정식 계약이 체결됐다고 주장했다. 계약을 해지하기 위해서는 총 공급금액의 10%인 6,800만원의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며 환급을 거절한 것이다.

 

▲신탁계약 종료·해제되면 불법행위 등 책임 면제 우려도=신탁계약이 종료된 이후 사업시행에 대한 책임이 면제되는 내용도 문제가 됐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136개 계약서는 모두 “신탁계약 종료·해제 시 부동산신탁사의 소비자에 대한 모든 권리·의무를 시행위탁자에게 면책적으로 포괄 승계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해당 내용이 표준계약서에는 없는 내용으로 신탁사가 불법행위나 중대 과실을 일으키는 등의 귀책이 있는 경우에도 신탁사가 책임을 면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20개(14.7%)의 계약서에는 신탁사 면책에 대해 이의제기를 금지하는 등 소비자의 권리를 부동하게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아파트 분양계약에 따른 인지세를 입주자가 납부하도록 전가하는 내용도 상당수 적발됐다. 부동산 소유권 이전 시에는 인지세법에 따라 약 15~35만원의 인지세가 발생하는데, 2인 이상 공동으로 계약서 등의 문서를 작성하는 경우에는 연대해 납부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조사대상 중 102개(75%)는 소비자가 인지세 전액을 부담하도록 했고, 사업주체와 소비자가 각각 50%씩 부담하는 계약서는 6개(4.4%)에 불과해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소비자원은 “부동산신탁 시장 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등 향후 신탁사를 통한 주택공급이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공정한 분양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소비자에게 불리한 계약사항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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