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수도권에 소재한 한 조합으로부터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 성공적으로 사업시행인가를 얻었다는 경사스러운 소식을 전해 듣고 함께 기뻐했던 사실이 있다. 

행정청의 정비사업 억제 기조와 비대위의 극렬한 반대, 위축된 부동산 시황 등 삼중고를 이겨내고 얻은 결실이었기에 기쁨이 배가되었던 듯하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비대위에 의해 조합해산 신청이 접수된 것이다.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었던 탓에 모두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황망한 일이었지만 언제까지나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조합집행부는 다각도로 상황을 타개할 방안을 모색하였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손쉽게 떠올린 방책이 해산동의에 대한 철회서의 징구·제출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해산동의에 대한 철회 이슈가 떠오를 때마다 짜증이 솟게 된다. 변호사가 감정적으로 울컥하는 것은 기대했던 성공보수금을 떼일 때만이 아니다. 동일한 이슈에 관한 자문요청을 반복해 받으면서도 뾰족한 답을 낼 수 없을 때 매번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변호사가 명확한 답이 없는 문제를 맞닥뜨리는 경우는 사실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나름대로의 논리를 세워 어떻게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별다른 감정의 동요를 겪지는 않는다. 

유독 해산동의 철회 이슈가 화를 돋우는 것은 변호사로서 나름의논리를 구축하기 어려울 만큼 법적 규율이 어지럽기 때문이다.

해산동의에 관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자체의 규율내용에는 별 유감이 없다. 문제는 시행령이다. 

해산동의와 그 철회에 관한 사항은 시행령 제28조제4항이 규정하고 있다. 해산동의를 포함한 각종 동의의 철회는 동의에 따른 인·허가 등의 신청 전에 철회할 수 있도록 하고, 동의 철회의 의사표시는 철회서(지장날인, 자필서명, 신분증명서 사본 첨부 등의 형식적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를 동의의 상대방 및 시장·군수에게 내용증명의 방법으로 발송하도록 하였다. 

철회의 의사표시는 철회서가 상대방에게 도달한 때 또는 시장·군수가 동의의 상대방에게 철회서가 접수된 사실을 통지한 때 중 빠른 때에 효력이 발생한다고 규정한다. 글자 수도 많고 내용도 복잡한 것이 대단히 체계적인 냄새를 풍기고 무언가 있어 보이긴 한다.  

그러나 현실로 발생한 사안에 위 규정의 적용을 시도해보면 시쳇말로 답이 나오질 않는다. 당장 떠오르는 문제가 ‘동의의 상대방’이 도대체 누구냐는 것이다. 

토지등소유자가 철회서를 동의의 상대방에게 발송해주어야 하고 시장·군수도 동의의 상대방에게 철회서 접수사실을 통지해 주어야 하는데 그 누구도 동의의 상대방이 누군지 쉽게 답하지 못한다. 

혹자는 해산동의의 상대방이 해산동의를 징구하러 다니는 이른바 ‘비대위’가 아니냐고 한다. ‘비대위’가 법적으로 하나의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의 체계(의사결정기관, 집행기관, 내부규약 등)를 갖추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사람도 아닌 것을 동의의 상대방으로 보려한다는 점에서 이 견해는 월드컵대표팀 만큼 광속탈락이다. 

해산동의서를 실제로 걷어가는 사람이 동의의 상대방 아니겠냐는 설도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남의 손을 빌지 않고 제발로 걸어가 해산동의서를 시장·군수에게 접수하거나 내용증명 발송하는 사람의 경우 아예 동의의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또 토지등소유자가 아닌 제3자가 해산동의서를 걷어 갔을 경우 정비사업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제3자를 법적으로 대단히 중요하게 취급하게 되는 엉뚱한 결과를 가져온다. 정비사업의 직접 이해당사자인 토지등소유자가 해산동의서를 징구하여 갔다면 어떨까. 일응 동의의 상대방이라고 부르기에 적당할 것 같아 솔깃해진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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