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10분의 1 발의로 직접 총회를 소집하여 조합임원을 해임할 수 있다는 내용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 이후 임원 해임에 관한 법적 다툼이 부쩍 늘었음을 체감하고 있다. 

조합의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기 어려운 조합원들로서는 오죽했으면 해임이 되었겠느냐는 결과론적 사고에 빠지기 십상이지만 해임의결이 반드시 조합임원의 비리나 무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정비사업의 수익성 악화를 책임지울 희생양이 필요하거나 사소한 잘못을 침소봉대하는 정치적 반대파들의 선동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해임결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명백하게 드러난 개인비리나 업무상 과오 등을 이유로 해임되었다면 모를까 특별한 사유도 없이 하루아침에 해임당한 임원들의 심정이야 구구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이 어렵지 않을 터, 이들의 참담한 심정은 효력정지나 무효확인 등 해임결의를 다투는 소송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소송에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과연 상당한 금액에 이르는 변호사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가 당면한 문제로 떠오른다. 

정당한 사유없이 이루어진 해임결의는 결국 무효로 확인될 것이라는 주관적 확신에 아직은 조합업무 집행권을 가지고 있다는 객관적 상황이 보태어져 대부분의 경우 조합의 돈으로 변호사 보수가 지급된다. 

해임당한 임원의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질 조치이겠으나 해임을 주도한 반대 입장에서 본다면 피가 거꾸로 솟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되었든 해임된 집행부가  해임결의를 다투기 위해 조합 돈으로 변호사까지 선임하고 나서는 것은 심정적으로 도저히 용납이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조합 돈으로 변호사 비용을 지출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이들의 강경한 태도는 종종 고소·고발로 이어지게 된다. 써서는 아니 될 곳에 조합 돈을 지출한 것이기에 업무상 횡령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변호사 보수 지급 문제가 형사적 문제로까지 비화되는 것이다. 

정당하지 않은 해임결의를 다투기 위해서라면 조합 돈으로 변호사비용을 지출해도 무방하다는 입장과 해임된 마당에 소송을 위해 조합 돈까지 지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 과연 어느 쪽 손을 들어주어야할까. 

우리 대법원은 대표자 개인 명의의 소송을 위한 변호사 보수를 단체의 비용으로 처리하는 것이 업무상 횡령에 해당하는지가 다투어진 사안에서 ‘단체의 대표자 개인이 당사자가 된 민·형사사건의 변호사 비용은 단체의 비용으로 지출할 수 없지만 예외적으로 분쟁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관계는 단체에 있으나 법적인 이유로 대표자의 지위에 있는 개인이 소송 기타 법적 절차의 당사자가 되었다면 단체의 비용으로 지출해도 무방하다’는 일반원칙을 천명한 바 있다(대법원 2004도6280 판결). 

개인적으로는 해임결의의 효력을 다투는 소송의 실질적 이해관계는 해임된 임원 개인보다는 단체인 조합에 있다고 생각한다. 해임결의의 효력을 다투는 것은 조합의 업무가 도대체 누구에 의하여 집행되어야 법적으로 효력이 있으며 정당한가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법인의 이사에 대하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결정이 된 경우 사실상 법인의 업무수행에 지장을 받게 될 것은 명백하므로 법인으로서는 이사 자격의 부존재가 객관적으로 명백하여 항쟁의 여지가 없는 경우가 아닌 한 가처분에 대항하여 항쟁할 필요가 있고, 법인 경비에서 당해 가처분 사건의 소송비용을 지급하더라도 법인의 경비를 횡령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대법원 2003도1174 판결)도 업무집행권을 가진 임원의 지위를 다투는 소송의 실질적 이해관계가 개인이 아닌 단체에 있음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결론적으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임결의를 다투는 소송의 변호사 보수를 조합의 돈으로 지급한다고 하여 업무상 횡령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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