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이 정비사업을 시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실로 다양한 협력업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협력업체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해도 조합의 입맛대로 계약을 체결할 수는 없다. 협력업체의 선정과 계약에는 법령상 또는 정관상 적법한 절차의 준수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조합의 협력업체 중 가장 중요한 지위는 단연 시공자가 점한다. 건물의 신축이 시공사의 조력에 의해 가능해질 뿐 아니라 정비사업에 투여되는 사업비·운영비의 조달 역시 시공사의 자력에 의존하는 바가 크기에 그러하다. 


심지어 시공자 선정이 가능하냐, 얼마나 많은 수의 건설사가 관심을 보이고 있느냐가 해당 구역의 사업성을 가늠하는 결정적 잣대로 기능하기도 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역시 시공자의 특수한 지위에 주목하여 법령화된 시공자 선정기준을 제정하여 조합으로 하여금 철저히 준수토록 강제하고 있다. 


시공자 이외의 협력업체는 어떠한가. 대표적으로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와 설계업자의 선정이 문제되는데 추진위원회 단계에서의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의 선정에 관하여는 시공사 선정기준과 유사한 내용의 선정기준이 법령으로 제정되어 운용되고 있다. 조합단계에서 새로이 정비업자를 선정하고자 할 경우 그 선정을 규율하는 특별한 법령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정비법이 시공자를 제외한 협력업체의 선정에 관하여 완전히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공자, 설계자, 감정평가업자,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의 선정 및 변경, 예산으로 정한 사항외 조합원의 부담이 될 계약에 관하여는 반드시 총회를 거치도록 하고 있긴하다.(도시정비법 제24조). 


그러나 이를 협력업체의 선정에 관한 구체적 규율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해당 조항은 단순히 조합이 사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의 주요업무를 나열하고 그에 관하여 반드시 총회를 거치도록 하는데 주안점이 있을 뿐 정작 협력업체의 구체적 선정절차에 관해선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조합단계에서의 협력업체 선정에 관한 구체적 방법과 절차는 시공자를 제외하고는 온전히 정관에 맡겨져 있는 셈이다. 문제는 협력업체 선정과 계약에 관하여 규율하고 있는 표준정관의 내용과 그러한 표준정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조합의 현실이다.


표준정관상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와 설계업자는 시공자의 선정에 관한 내용을 준용토록 하고 있다. 고맙다고 해야할지 야속하다고 해야할지 그 밖의 협력업체의 선정에 관하여도 표준정관은 쓸데없이 수다스럽다. 조합이 용역업자와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경우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계법)을 준용하도록 한 것이다. 


표준정관의 아무렇지 않은 듯 심드렁한 문구를 보노라면 자칫 국계법을 달랑 몇 조문 안 되는 초간단 법률로 오해하기 쉬운데 천만의 말씀. 국계법은 시행령과 시행규칙, 부칙조항까지 합하면 수백에 육박하는 조문으로 구성되는 상당히 방대한 분량의 규범체계를 가지고 있다.


표준정관을 입안한 실무관은 아마도 조합의 운영현실이나 국계법의 내용에 관하여 상당히 무지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어떤 조합도 지키지 못할 어마무시(?)한 내용을 눈 하나 깜빡않고 표준정관에 집어 넣었을 리 없다. 


사업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잘 몰라서 그렇다 치고 사업현장에서 직접 정관 제정에 관여하는 정비사업 관련자들은 스스로 박은 대못에 관해 그 책임을 질타당해도 딱히 할 말이 있을 수 없다. 


어떤 점에서 본다면 시공자 선정기준 보다 더 엄격하고 복잡한 절차를 요구하는 정관의 국계법 준용부분은 정비사업의 현실에 맞추어 시급히 삭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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