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그래픽=홍영주 기자]

재건축·재개발사업에서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이하 정비업체)는 ‘조강지처’로 평가된다. 추진위원회 단계에서부터 조합을 해산·청산하기까지 사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정비업체는 정비사업을 계획하는 조합의 두뇌이자 업무를 직접적으로 수행하는 손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정비업체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모든 비리의 시작이 정비업체로부터 시작된다는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성과 투명성을 자부하는 공공이나 신탁방식 정비사업도 정비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만큼 정비업체는 정비사업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정비업체들이 최근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모호한 법률과 불합리한 처벌 기준 등으로 인해 업무정지나 등록취소 처벌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정비업체의 위기는 정비사업의 위기이기도 하다.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비업체의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총회 결의 없이 정비업체 승계한 조합은 불법? 국토교통부의 운영규정이 분란만 키워

지난 2019년 법제처와 국토부는 추진위원회에서 선정한 정비업체를 조합에 승계할 수 없다는 법령해석을 내렸다. 그동안 조합의 업무까지 진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업계의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해당 논란은 수년간 지속됐다. 법원마다 각기 다른 판결을 내리면서 업계의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이후 서울고등법원이 추진위원회가 선정한 정비업체는 조합에 포괄승계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고,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기각하면서 사건이 종결됐다.

문제는 결과적으로 추진위가 정비업체를 조합에 승계해 불법을 저지른 것으로 인식됐다는 점이다. 모호한 법령 규정으로 인해 장기간 논란이 됐던 일임에도 조합과 정비업체가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인식된 것이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에는 국토부가 고시한 추진위원회 운영규정 내용이 핵심이었다. 현행법상 정비업체는 조합설립에 필요한 동의와 신청, 사업성 검토, 사업시행계획서 작성, 설계자·시공자 선정 업무 지원, 관리처분계획 수립 등 정비사업 전반을 진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추진위나 조합에서는 정비업체를 승계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심지어 법률전문가들조차도 조합 승계가 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렸다.

하지만 추진위 운영규정에 업무범위를 한정하고, 업무범위를 초과한 업무나 계약 등은 조합에 승계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도시정비법이 아닌 운영규정상의 문구가 승계 불가의 판결의 핵심 사항이 됐다는 것이다. 반면 설계자의 경우 추진위가 선정했더라도 조합에 승계가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형평성 논란까지 번졌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운영규정 개정을 요구했다. 정비업체의 업무 연속성과 조합 운영의 편의성 등을 감안해 승계가 가능하도록 개선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운영규정은 개정되지 않은 채 그대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서면결의서도 동의서? 서면결의서 징구 위임 계약만으로 정비업 등록 취소

정비업체가 서면결의서 징구 업무를 다른 업체와 계약했다는 이유로 등록 취소 처분을 받는 것도 불합리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 2022년 A정비업체는 한 재개발조합의 총회를 위해 B업체와 서면결의서 징구 용역계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로 도시정비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다. 현행법에는 조합설립의 동의나 정비사업의 동의에 관한 업무의 대행을 정비업체의 고유 업무로 규정하고 있다. 만약 정비업체의 업무를 다른 용역업체나 직원에게 수행토록 한 경우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된다.

문제는 서면결의서를 정비사업 동의 업무로 볼 수 있느냐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정비사업 동의는 추진위원회 구성 동의나 조합설립 동의 등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동의서를 징구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총회 안건이 관리처분계획이나 조합정관 등 조합원의 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라면 서면결의서도 정비사업의 동의로 봐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A정비업체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처벌을 받아 정비사업전문관리업 등록이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업계의 일반적인 해석을 뛰어넘는 판결로 인해 향후에도 유사한 사례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일부 정비업체는 서면결의서 위탁 등의 문제로 유사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비업체 등록기준 미달되면 즉시 처벌… 정비업체 직원은 기술인력 인정 못 받아

정비업체 등록취소 등의 기준도 과도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도시정비법 시행령 별표에는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의 등록취소 및 업무정지처분의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대표적인 등록취소 사유가 법령에서 정한 정비업 등록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다. 

문제는 직원 퇴사나 사망 등의 이유로 불가피하게 일시적으로 등록기준에 미달된 경우다. 정비업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법인 기준 자본금 5억원에 상근인력 5명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만약 상근인력이 5명인 정비업체에서 직원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급하게 퇴사하는 경우에는 등록기준 미달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등록취소 등의 처분기준이 변경되면서 유예기간이 사라진 탓이다. 지난 2018년 2월 도시정비법이 전부 개정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법령에서 정한 등록기준에 3개월 이상 미달하게 된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했다. 

전문인력에 대한 기준도 불합리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비업 등록을 위한 인력확보 기준에는 5인 이상이 상근해야 하는 전문인력으로 건축사·기술사와 감정평가사, 공인회계사, 변호사, 법무사, 세무사 등을 규정하고 있다. 

또 정비사업 관련 업무를 3년 이상 종사한 사람도 전문인력으로 등록할 수 있는 규정도 있다. 해당 규정에 적용되는 사람은 공인중개사와 행정사, 정부·공공기관 근무자, 정비사업 관련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다.

하지만 정작 정비업체에 장기간 근무한 경우에는 전문인력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당장 정비업계에 3년간 종사한 공인중개사 등보다 10년 이상 정비업체에 근무한 직원이 실무는 물론 전문성이 높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대형 정비업체 대표는 “현재 기준으로는 정비업체에 수십년을 근무하더라도 전문인력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기술인력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정비사업 직원이 되레 공인중개사나 행정사 자격증을 따야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비업계의 현실성을 감안해 불합리한 정비업체 제도를 속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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