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서는 ‘예산으로 정한 사항 이외의 조합원에 부담이 되는 계약’은 총회의결을 거쳐야 하고, 위반시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런데 예산에 반영되지 않은 지출을 해야 할 때마다 사전에 총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면 시간과 비용의 낭비가 심할 수 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고자 조합은 예상하지 못한 정비사업비의 지출을 위해 예비비 항목으로 예산을 수립하고 있다.

사실 예비비 제도는 예산 수립 후 변화한 여건에 대응하여 예산집행의 신축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소하겠지만 헌법적 근거까지 있는 제도이다. 헌법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헌법 제55조제2항의 예비비 제도는 헌법 제54조에 따른 국회의 예산의결권에 대한 예외규정으로 기능한다.

다만 예비비 제도는 국회의 사전의결권을 형해화시킬 수 있는 제도적 문제가 있고, 이에 국가재정법이나 지방재정법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이라는 예측불가능성을 예비비 사용의 필요 요건을 정하고 있다. 

다시 도시정비법으로 돌아와 보자. 도시정비법에서는 예비비에 대해서 별도로 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서울시나 부산시 등의 지자체가 만든 ‘정비사업 조합 등 표준 예산·회계규정’에 따르면 조합은 예측할 수 없는 예산외의 지출 또는 예산의 초과지출에 충당하기 위해 예비비를 지출예산에 계상할 수 있고, 예비비는 지출예산 총액의 10% 범위 내에서 편성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대법원도 기본적으로 예비비의 사용이 정당한 사유에 근거한 이상, 예비비 금액을 포함하여 총회에서 의결 받은 예산 범위 내에서의 예산 집행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리하자면, 예비비를 포함해 예산 총액이 설정되어 있고, 예산 수립당시 예측할 수 없는 경우에는, 예산 총액 범위내에서 얼마든지 계약이 가능하며, 이 때에는 별도의 총회 의결이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자체에서는 아직도 예비비 범위 내에서 계약한 것임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예산 외 조합원에게 부담이 되는 용역계약으로 보고 수사의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한편 예비비 범위 내에서 지출이더라도 아래와 같은 경우는 정당화 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1)법원은 당해 연도 예비비를 다음 연도 예비비로 전용하는데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예비비가 1회계연도의 범위에서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예산외 지출에 충당한다는 점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2)과다하게 예비비 항목 예산을 정해놓고 수 십회에 걸쳐 예비비를 사용한 사안에서도, 법원은 조합 총회 결의를 잠탈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비비 제도를 남용한 것으로서 사전에 총회 의결을 얻는 방법을 선택했어야 한다라고 판단하였다.

(3)또한 법원은 조합장이 기지급한 돈을 조합 예비비로 보전해준 것이 문제된 사안에서도 이는 정당한 예비비의 지출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이렇듯 법원은 예비비 제도가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위한 제도임을 인정하면서도, 도시정비법을 잠탈할 수 있는 경우를 통제하기 위하여 예비비 사용의 필요 요건은 엄격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바, 예산 사용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한국주택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