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부 토지·가옥 매매문서 원본 [사진=서울시 제공]

조선시대 서울 집값은 얼마였을까? 한성부 부동산 300년의 매매문서가 자료집으로 공개됐다.

서울역사박물관(관장 최병구)은 최근 소장유물자료집14 ‘조선후기 한성부 토지·가옥 매매문서1’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자료집에는 조선후기 서울의 중부와 동부 지역에서 거래된 토지와 가옥 매매문서 304점이 수록됐다. 각 고문서의 도판과 원문을 싣고 전문가 해설을 추가해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 독자도 이해할 수 있다.

소장유물자료집에는 장기간 거래된 문서가 다수 수록돼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동대문 밖 농지를 거래한 문서는 36점의 문서가 연결돼 길이만 12m에 이른다. 1609년부터 1765년까지 150년 동안 토지를 거래한 이력과 토지 소유자를 확인할 수 있다.

성부 토지·가옥 매매문서의 펼친 사진. 1609년부터 1765년까지 동대문 밖 농지를 거래한 매매문서 36점을 이어붙였다. 길이가 12미터에 달한다. [사진=서울시 제공]

효령대군 후손이 소유했던 종로의 기와집은 180년 동안 거래된 이력이 남아있다. 1724년의 집값은 은화 300냥(동전 약 600냥에 해당)이었는데 19세기 중반까지 서서히 상승하더니 19세기 말에 이르러 동전 2만8,000냥으로 폭등했다. 한성부 집값 상승과 조선 말기의 인플레이션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18세기 전반의 쌀 1섬은 은화 1~2냥 정도에 거래됐다. 당시 1섬은 약 80㎏ 무게로 추산되며 현재 80㎏ 산지 쌀값은 20만원 정도다. 그러므로 은화 300냥은 현재 4,000만원 이상의 가치로 볼 수 있다.

매매문서 서명 부분(효생). 노비 효생은 손가락 마디를 표시하여 서명했다. [사진=서울시 제공]
매매문서 서명 부분(효생). 노비 효생은 손가락 마디를 표시하여 서명했다. [사진=서울시 제공]
매매문서 서명 부분(김조이). 김조이는 손바닥을 그려 서명을 대신했다. [사진=서울시 제공]
매매문서 서명 부분(김조이). 김조이는 손바닥을 그려 서명을 대신했다. [사진=서울시 제공]

노비가 자신의 집을 매도하는 사례도 있어 흥미롭다. 신분을 사비(私婢, 개인 소유의 여종)로 기록한 효생이라는 인물은 지금의 종로 공평동 부근에 기와 5칸, 초가 3칸의 집을 소유했다가 은화 150냥에 매도했다. 노비가 경제활동을 했을 뿐 아니라 상당한 재산을 소유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료집을 살펴보면 노비 외에도 여성, 군인, 중인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부동산을 거래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부동산은 백성들의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다. 이에 부동산을 매매할 때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해 소유권 이전을 분명히 했다. 또 한성부에서는 부동산 거래를 관리하기 위해 거래 당사자와 증인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공증문서를 발급했다.

부동산 매매과정은 문서로 작성해 소유주가 보관했다가 매도할 때 새로운 계약서에 이어 붙여 매수인에게 양도했다. 이 문서들은 매물의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이력서이자 당시 사람들의 경제활동 기록이 고스란히 담긴 역사자료가 된다.

조선후기 한성부 토지·가옥 매매문서1 소장유물자료집 [사진=서울시 제공]
조선후기 한성부 토지·가옥 매매문서1 소장유물자료집 [사진=서울시 제공]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올해 안으로 한성부 서부·남부·북부 소재 토지·가옥 매매문서 200여 점을 수록한 소장유물자료집 2편을 이어서 발간할 예정이다. 소장유물자료집은 서울역사박물관 내 기념품점과 서울특별시청 지하에 있는 서울책방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에서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홍영주 기자 hong@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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