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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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로나19 등 감염병 확산 방지 차원에서 정비사업에 도입된 전자투표가 여러 현장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집행부 해임 등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조합원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서울 강동구 A재건축사업장은 지난달 조합원 발의 임시총회를 개최했다. 주요 안건은 조합장 등 집행부 선임으로, 전자투표 방식이 도입됐다.

문제는 지난해 전자투표로 진행한 조합장 등 해임총회가 서울고등법원의 결정으로 효력이 정지됐다는 점이다. 아직 본안소송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집행부 구성을 위한 선임총회를 강행한 것이다.

실제로 이 사업장은 지난해 6월 집행부 해임을 골자로 한 임시총회를 열고 조합장 등 임원 해임 안건을 통과시켰다.

해임총회에서 논란이 된 사안은 본인이 직접 전자투표에 참여했는지, 전자투표자를 직접참석으로 볼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여부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45조제8항에 따르면 시장·군수 등이 조합원 직접출석이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우 전자적 방법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른 재난의 발생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발생했을 경우다. 코로나19에 따른 집합금지 조치가 내려진 경우 전자투표를 동반한 총회가 가능했고, 직접참석으로 인정됐다.

하지만 A사업장은 집합금지가 해제된 상황에서 전자투표 방식으로 총회를 진행했다. 당시 구청장이 전자투표로 의결권 행사를 승인할 수 없다는 공문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발의자 측은 총회를 강행해 집행부 해임 안건을 가결시켰다.

이를 둘러싼 갈등은 총회효력정지가처분 소송으로 이어졌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기각 결정을 내렸다. 코로나19 감염 확산 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구청으로부터 전자투표 승인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반면 항고심에서는 1심 판단이 뒤집혔다. 서울고등법원은 전자투표를 통한 서면 의결권 행사는 직접출석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전자투표를 서면결의로는 인정하면서도 총회에 직접 참석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상 성원 미달로 총회 개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 “전자투표에 나선 1,016명을 서면에 의한 의결권 행사라고 본다면 직접 출석한 조합원은 14명에 불과하다”며 “임시총회는 직접출석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명시했다.

도시정비법 제45조제7항에 따르면 조합임원 선임 및 해임은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이때 조합원 10% 이상이 직접 출석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 사업장은 해임총회 개최 당시 전체 조합원이 약 2,300명으로, 이중 10% 이상의 직접참석이 필요했던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조합 집행부 해임에 대한 적법성 논란이다. 아직 본안소송에 대한 결과가 나오기 전인데도 다시 전자투표를 동반한 선임 총회를 개최하면서 주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본안 소송 역시 항고심과 같은 결과가 나오면 지난달 열린 총회는 무용지물이 된다.

업계에서는 전자투표에 대한 부작용 및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세부 지침을 마련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전자투표로 총회 인정 여부에 대한 법원 판단이 엇갈리고 있어 소집이 필요할 때 지자체 승인을 받는 등 지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자투표 직접출석 인정 여부에 대한 규정 마련도 요구되고 있다. 전자투표는 총회 개최 이전에 이뤄져 서면결의와의 차이점을 찾을 수 없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당일 전자투표 등의 방법을 통해 직접출석으로 인정할 수 있는 세부적인 기준을 정립해야한다는 것이다.

전자투표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인증’ 제도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직접 전자투표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인정하는 전자서명인증사업자의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는 게 핵심이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전자투표는 신속성과 정확성, 편리함 등이 장점이지만, 세부적인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아 곳곳에서 조합원들의 혼란과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에서 전자투표 관련 시스템과 운영방안, 법제화 등을 마무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혁기 기자 lee@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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