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상담을 받으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 ‘구두로는 합의가 되었는데 계약서를 쓰지 않았습니다. 법적 구속력이 있나요?’이다.


계약은 청약에 대해 승낙이 이루어져 대립하는 의사가 합치되면 성립한다. 성립한 계약에 흠이 없으면 효력이 있다. 서면을 통해 의사합치가 있을 필요는 없다. 매매계약, 증여계약, 교환계약, 임대차계약 등 대부분의 계약이 그렇다.


최근에 나온 하급심 판례를 예로 들어보자. EBS가 영상제작업자 A씨와 사이에 공개방송 진행과 관련된 계약 체결을 교섭하고 있었다. A씨가 계약서 초안을 만들어 EBS 담당자에게 보내고, EBS는 그 초안을 수정하여 A씨 이메일로 보냈다. 


이에 A씨는 “수정 계약서대로 진행해주세요”라고 이메일로 회신했다. EBS 측은 법인도장이 날인된 계약서 2부를 A씨에게 보내면서 날인 후 1부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다. A씨는 그 1부를 송부해 주지 않았다. EBS는 계약서 내용대로 녹화를 하여 방송을 내보냈다. EBS는 A씨를 상대로 계약에서 정한 돈을 달라고 소송을 냈다. 


쟁점은 A씨가 최종 계약서에 날인을 하여 EBS에 보내주지 않았음에도 계약이 성립되었는지 여부다. 


법원은 계약내용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메일 등으로 최종적으로 계약 내용에 관하여 합의에 도달했다면 그 내용대로 계약이 성립되었다고 보았다. 


이 사례에서는 이메일로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통해 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보았다. 


쪽지 같은 메신저, 블로그나 인터넷 카페 게시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한 대화도 같다. 카카오톡 같은 SNS를 통해 이루어진 대화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러한 디지털 공간에서의 대화는 적극적으로 삭제하지 않는 한 그대로 살아남아 있다. 아날로그 공간에서는 적극적으로 보존해 두어야 화석이라도 남는 것과 대비된다.


사람들은 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신중하게 생각해서 날인을 한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상대방 요구에 쉽게 응하는 경향이 있다. 아날로그 공간에서 두 사람만 대화할 때 쉽게 약속을 하는 행태와 동일하다. 


아날로그 공간에서는 대화 내용을 입증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대화는 그렇지 않다. 콘텐츠로 남는다. 내가 한 말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오간 배경을 이루는 콘텐츠가 모두 남아 있다. 


계약이 성립되었다고 인정받기가 용이해졌다. 디지털 공간에서 조심해서 말해야 하는 이유다. 상대방이 말을 바꿀 때 디지털 공간에서 흔적을 찾아 들이밀어 보자. 화석이 아닌 살아있는 콘텐츠의 힘을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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