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총회가 성사되고 안건이 의결되려면 일정 수의 조합원 참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총회를 시작하기 위한 의사정족수와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한 의결정족수, 여기에 직접참석자 비율까지. 의사정족수와 의결정족수야 모든 회의체에서 의결을 이루기 위한 일반적 요건이기에 달리 설명이 필요치 않다. 


직접참석자 비율은 토론과 비판과정이 생략되는 서면결의의 폐해를 완화하기 위해 도입된 정비사업 특유의 제도다. 취지야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도입 이전보다 직접참석자 수가 다소 증가하였다고 하여 비판과 토론이 활발해졌다는 징후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직접참석자 비율을 맞추기 위한 조합의 부담만 가중되어 제도도입의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이쯤 되면 진지하게 제도의 폐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각설하고 조합의 입장에서는 총회를 개최할 때마다 직접참석자 비율을 맞추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다. 특히 전체 조합원 과반수의 직접참석이 요구되는 시공자선정 총회에서 직접참석자 수를 늘리기 위한 필사의 노력은 때로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시공자 선정총회 과정에서 실제로 던져진 문제적 상황 하나. 조합원 중 1인이 다른 조합원 4인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아 총회에 출석하였을 경우 직접 참석자 수를 몇 명으로 산정하여야 할까. 참석을 위임한 조합원 수에 주목하면 5인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그러나 토론과 비판의 활성화라는 직접참석 제도의 취지를 중시하면 직접참석자는 1인에 불과하다고 볼 여지도 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총회의 소집절차·시기 및 의결방법 등을 정관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표준정관은 서면 또는 대리인을 통한 의결권 행사를 인정하고 출석을 대리인으로 하려면 인감 또는 조합에 등록된 사용인감으로 대리인계 또는 위임장을 작성하여 조합에 제출하도록 하였다. 그밖에 의결권 대리행사의 추가적 요건이나 대리인 자격제한은 찾아볼 수 없다. 요컨대 총회 출석을 대리인으로 하고자 하는 경우 정관이 명시한 대리참석 요건(조합원과 직계존·비속이나 배우자 등 일정한 관계에 있을 것, 대리인계 또는 위임장을 제출할 것)만 갖추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조합원은 총회 출석을 위하여 다른 조합원의 대리인으로 지정된 자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중복하여 지정할 수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때 대리인은 정관에 의하여 다수의 조합원을 각각 대리하여 총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파악됨은 물론이다.     


주식회사의 의결권 대리행사 제도를 참고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상법 역시 주주가 대리인을 통하여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주식회사의 경우 사장된 의결권을 발굴하여 주주총회 정족수를 맞추기 위해 다수의 주주에게 의결권 행사를 위임해 달라고 집단적으로 권유하는 사례가 많다. 이른바 ‘의결권의 대리행사 권유’ 또는 ‘위임장 권유’라는 것이다. 위임장 권유에 의한 의결권 대리행사는 대리인 1인이 다수 주주를 각각 대리하여 총회 출석하는 것으로 상법상 별다른 제한없이 허용되고 있다. 


이처럼 대리인 중복지정에 관한 제한이 없는 조합정관, 보다 세련되고 선진적인 의결 시스템을 갖춘 주식회사의 위임장 권유제도 등을 고려해 볼 때 조합원은 다른 조합원이 지정한 대리인을 중복하여 자신의 대리인으로 지정할 수 있고, 그 대리인은 다수의 조합원을 각각 대리하여 총회에 직접 출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앞서의 문제적 상황에서 직접참석자 수는 1인이 아닌 5인으로 산정하는 것이 옳다. 보다 근본적으로 애초의 도입취지와는 달리 불필요한 부담으로만 기능하고 있는 직접참석자 비율제도는 담백하게 실패를 인정하고 하루 바삐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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