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비용의 책임소재를 두고 조합임원과 해산동의자 사이에 입장차이가 확연하다. 시공자나 정비업체는 조합의 사업을 도와주는 협력업체로 인식되지만 조합이 해산되는 상황에서는 조합 채권자로서의 지위가 두드러지게 된다. 조합에 빌려주었던 돈이나 용역비 채권의 회수를 위한 조치를 모색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조합 채권자가 우선적으로 취하는 채권회수책은 조합임원들에 대한 가압류다. 조합임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조합이 짊어진 채권을 당연히 책임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조합은 엄연히 개인인 조합임원과는 법적으로 별개의 인격을 가지기에 조합에 대한 채권을 가지고 이들 조합임원 개인에게 당연히 그 책임을 추궁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남이 부담하는 채무를 내가 대신 책임져 주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이치기에 그렇다. 

그러나 이들 조합채권자들은 통상 조합과 계약을 체결할 당시 조합임원들에게 연대보증을 요구하고 조합임원들이 수용하지 않으면 계약체결 자체를 거부하는 일이 잦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연대보증을 서게 된다. 조합 채권자들은 조합임원들에 대해 바로 이 연대보증 책임을 묻고 나서는 것이다. 연대보증 탓에 조합 채권자들로부터 가압류 등 소송상 조치를 당한 조합임원들은 불가피하게 다른 조합원들에 대하여 구상권을 보전하기 위한 가압류 조치를 취하기에 이른다. 

사실 채권액이 그다지 크지 않은 협력업체의 경우 조합임원에 대하여 연대보증 책임을 추궁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지만 자금투여 규모가 큰 시공자의 경우 조합임원에 대한 연대보증 책임 추궁만으로는 채권회수에 턱없이 모자란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합 채권자들이 막대한 자금을 투여하면서 만약의 경우 담보가 될 수 있는 재산으로 생각한 것은 조합임원들의 재산뿐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정비구역 내 조합원들이 소유하는 토지 등 부동산을 자신의 채권을 보전해줄 최후의 보루로 여기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조합 채권자들은 흔히 조합원들의 개인재산에 대하여 직접 가압류를 신청하거나 대여금반환이나 용역비 청구 등 계약상 책임을 추궁하는 소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조합 채권자들의 의도는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조합과 조합원은 별개의 인격이기에 조합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을 근거로 직접 조합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남의 빚을 갚도록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어 법률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혹자는 조합이 조합원에 가지는 비용분담청구채권을 조합 채권자가 대신 행사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어려운 말로 채권자 대위권을 행사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법원이 인정하기 어렵다. 채권자 대위권 행사가 가능하려면 채무자인 조합이 무자력 상태, 즉 빚보다 재산이 적어야 하는 상황에 빠져있어야 한다. 조합에 특별한 재산이 없으니 당연히 무자력 상태이고 채권자 대위권은 손쉽게 인정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조합명의로 등기된 부동산 등 값나가는 재산이 특별히 눈에 띄지는 않지만 조합은 조합원들에 대하여 비용분담채권을 가진다는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 말하자면 조합은 빚을 진만큼 꼭 그만큼의 액수에 해당하는 채권을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 빚만큼의 채권을 가지게 되니 빚이 재산을 초과할 일도 없다. 무자력 상태에 빠지지 않으니 채권자 대위권도 성립될 리 없다. 

결론적으로 조합 채권자는 조합원에게 직접 책임 추궁할 수도 채권자 대위권을 행사할 수도 없다. 다만 조합에 대하여 소송 등을 통해 채권액을 확정받은 뒤 조합의 조합원에 대한 비용분담청구채권을 압류・추심하면 될 일이다. 아무도 가본 길이 아닌 듯 보이나 법리적으로 크게 무리없는 구성이다. 조합에 특별한 재산이 없다는 핑계로 조합임원들에게 연대보증을 강요하는 관행이 개선되어야 할 새로운 이유가 하나 늘어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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