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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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처가 추진위원회에서 선정한 정비업체는 조합에 승계할 수 없다는 내용의 법령 해석을 내려 업계에 파장이 일고 있다. 


그동안 추진위가 협력업체로 선정한 정비업체는 사업완료 단계까지 계약을 체결해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법체처가 조합에서 정비업체를 다시 선정해야 한다는 해석을 내놓으면서 사실상 대부분의 조합들이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될 판에 놓인 것이다.


법제처가 정비업체 계약을 조합에 승계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근거는 추진위원회 운영규정과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이다. 


먼저 운영규정의 경우 추진위는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를 선정해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추진위원회 업무범위를 초과하는 업무나 계약, 용역업체의 선정 등은 조합에 승계되지 않는다는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추진위 단계에서 선정한 정비업체는 추진위 고유의 업무 범위로 한정해야 한다는 해석이다.


또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에는 추진위가 정비업체를 선정하려면 토지등소유자 전원으로 구성된 주민총회 의결을 거쳐야 하고, 조합이 정비업체를 선정하는 경우에는 조합원으로 구성된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제처는 추진위와 조합은 정비업체를 선정할 때 각기 다른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봤다.
특히 지난 3월 정부가 국토교통부 2019년 업무계획 보도자료 등을 통해 발표한 추진위가 선정한 정비업체가 조합설립 이후에도 사업에 계속 관여한다면 추진위와 정비업체, 건설업자의 유착관계 형성 등 비리가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도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업계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법제처의 해석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령 상의 내용보다는 국토교통부장관의 고시 내용이 대부분인데다, 법령의 입법취지나 목적 등을 고려하면 ‘정비업체 승계론’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비사업 관련 전문 법률가들도 조합 승계계약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법무법인 조운의 이민경 변호사는 도시정비법에서 추진위가 정비업체를 선정할 수 있도록 하면서 정비업체의 업무범위를 한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도시정비법 제32조제1항에 따르면 추진위는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를 선정, 변경할 수 있으며, 문리해석상 추진위가 정비업체에 위탁할 수 있는 사무가 제한된다고 볼 수 없다”며 “오히려 추진위와 조합의 연속성 제고를 위해 추진위 단계에서 포괄적 업무수행이 예정된 정비업체를 선정할 수 있도록 한 특별규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추진위 단계에서 조합설립인가 이후의 일을 미리 검토할 필요가 있는데다, 추진위와 조합의 사무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 대부분의 추진위가 정비사업 관리업무의 일체를 위탁하는 내용으로 계약을 체결한다”며 “조합으로 승계된 이후에도 추후 총회를 거쳐 정비업체를 변경할 수 있는 만큼 조합에 불측의 손해를 주는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유) 현의 안광순 변호사도 “도시정비법에서는 시공자 선정이나 사업시행계획, 관리처분계획 등은 조합의 업무로 규정하고 있지만,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의 선정은 추진위 업무로 명시하고 있다”며 “정비업체는 추진위 업무와 조합의 업무로 동시에 규정하고 있는 만큼 어느 단계에서 선정해도 무방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비업체의 대행업무는 추진위 단계부터 조합 단계까지 일관성이 필요하다”며 “추진위원회가 수행한 업무와 관련된 권리·의무는 조합이 포괄 승계한다는 규정이 있는 만큼 추진위에서 조합설립 이후의 용역까지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의 허미경 회원지원부장은 “정비업체는 지난 2003년 도시정비법이 시행되면서 추진위나 조합의 전문성이나 행정력 등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며 "조합이 정비업체를 다시 선정해야 한다면 이에 따른 비용 증가와 업무의 연속성 단절 등으로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도 도입의 취지가 명확한데도 ‘승계 불가’라는 해석을 내린 것은 추진위·조합과 정비업체의 비리 가능성을 시사한 정부를 뒷받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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