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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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이 학교 문제로 장기간 사업이 중단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선 조합이 건축심의나 사업시행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교육청과의 협의가 사실상 필수적이다. 하지만 교육환경평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보니 교육청의 무리한 요구에도 조합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일부 구역에서는 교육청의 학교부지 제공 문제 등으로 수년간 사업이 지연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광명11R, 학교 증설에서 추가 신설 요구에 1년 이상 정체=경기도 광명시 광명뉴타운11R구역은 지난 2017년 12월 건축심의를 통과했지만, 최근까지 사실상 사업이 중단됐다. 이 구역은 건축심의 당시 광명교육지원청과 수개월간의 협의를 통해 학교 증축안에 합의했다. 재개발로 인해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는 만큼 학생 수 증가를 고려해 기존 43개 학급에서 61개로 확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조합은 학교 증축에 따른 사업비로 300억원을 추가 부담키로 계획했다.


하지만 지난 9월 광명남초 학교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학교 추가 신설’을 주장하고 나섰다. 61개 학급을 짓기에는 부지가 좁고, 건물이 오래됐다는 것이 학교장 측의 이유였다. 당초 교육지원청과 협의를 마쳤음에도 학교 측에서 반대함에 따라 1년 이상 사업이 지연되면서 사업비가 800억원 가량 증가했다.


문제는 해당 학교 측과의 이견이 발생하면서 교육환경영향평가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환경영향평가는 지난 2017년 2월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사실상 필수 항목이 됐다. 사업시행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교육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해야 하는데, 평가심의의 전제조건인 협약서를 제출하지 못하는 만큼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조합의 사업비가 약 1조원 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1년간 이자는 400억~500억원 가량이 늘어나게 될 전망이다.

▲안양 재개발, 학교 부지 달라더니… 분양 마쳤는데 신설 계획 취소=안양시 재개발구역들도 학교 부지 문제로 수년간 사업이 지연됐다. 심지어 학교용지 제공에 합의한 이후 신설 계획을 돌연 취소함에 따라 사업에 큰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안양 호원초교주변지구는 지난해 5월 일반분양을 마치고 현재 막바지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분양 당시 호원지구는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를 홍보해 최고112.8대 1의 청약경쟁률을 보이면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최근 교육청의 초등학교 신설계획이 취소되면서 예비 입주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조합에서는 사업 막바지 단계에서 학교 신설계획이 취소됨에 따라 정비계획 변경절차부터 다시 진행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여기에 당초 학교용지 확보에 따른 임대주택 공급 축소 혜택까지 사라지면서 임대주택을 추가 공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임곡3지구와 덕현지구도 초등학교 신설계획 취소로 인한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임곡2지구는 지난해 말 일반분양을 앞둔 상황에서 초등학교 신설계획을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저출산에 따른 학생 수 감소 등으로 학교를 설립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덕현지구도 이주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학교 신설 취소로 정비계획 변경과 건축심의, 사업시행변경인가 등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전국서 학교 문제로 골머리… 교육영향평가 구체적인 기준 마련 ‘시급’=정비사업 과정에서 교육환경평가 관련 문제는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5단지도 교육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 차례 심의가 반려됐다. 조합은 교육청에 평가서를 제출했지만, 보류와 재심의 결정을 반복적으로 받아야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신천초 부지를 기부채납으로 인정받아 새로운 학교를 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산지역에서도 교육영향평가로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2017년 2월부터 올해 1월말까지 교육환경평가를 진행한 결과 약 40%가 통과하지 못했다. 총 67건의 심의를 진행했지만, 가결은 38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11건은 부결됐고, 18건을 보류된 상황이다.


교육영향평가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합이 교육청이나 인근 학교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실상 사업추진이 불가능해 진다. 이에 따라 일부 학교에서는 일조권 침해 등을 이유로 아파트 층수를 낮추거나,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강남의 A재건축단지는 학교용지부담금을 제공했음에도 일반분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이유로 인근 학교 측이 수십억원에 달하는 발전기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 허미경 회원지원부장은 “재건축·재개발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교육청과의 협의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에 조합은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며 “교육청의 무리한 요구를 방지하기 위해 구체적인 부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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