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지출예산을 수립하여 두거나 구체적인 용처에 관하여 미리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그간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예산 뒷받침 없이 먼저 자금을 집행하거나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예사였다. 향후 추인 안건을 상정하여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득하면 정비사업비 사용의 정당성 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였기 때문이다. 


근래 예산 외 조합원의 부담이 될 계약임에도 미리 총회의결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합임원이 형사처벌 받는 사례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고, 이제는 많은 조합들이 예산의 중요성에 관해 인식을 달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산수립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과 사전 예산수립의 원칙을 빈틈없이 관철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사전 예산수립을 향한 조합집행부의 의지가 아무리 드높다한들 조합의 사정상 총회를 개최하기 어렵다면 예산공백국면은 피하기 어렵다.


표준정관 조차 정기총회 개최시기를 “회계연도 종료일부터 2월 이내”로 하되 부득이한 경우 연기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회계연도 종료일로부터 상당한 기간의 예산공백 상태가 표준정관 자체에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셈이다.


회계연도 종료 후 예산수립을 위한 정기총회가 개최되기 전까지의 예상공백을 메울 수 있는 묘안은 무엇일까.
예산수립을 위한 정기총회의 개최기시를 지금처럼 “회계연도 종료일로부터 2개월 이내”가 아니라 “회계연도 종료일로부터 2개월 전까지”로 정관을 개정함으로써 회계연도 개시일 이전에 예산수립에 관해 총회결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방안은 조합이 총회 자체를 개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공염불에 그치기에 실효성 측면에서 매우 제한적이다.


예산수립 총회를 적시에 개최하지 못할 상황까지 대비한 근본적 처방은 역시 “준예산”이다. 예산공백 상황이 빚어질 경우 전 회계연도 예산에 준하여 집행할 있도록 함으로써 예산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유용한 제도이다.
많은 조합이 준예산 제도를 전혀 모르고 있거나 예산안 말미에 부동문자를 넣는 정도에 그치는 등 아직은 준예산 제도의 활용에 소극적이다. 궁극적으로는 정관에 준예산 제도를 설치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준예산 제도를 활용함에 있어 유의할 사항이 하나 더 있다. 서울시가 관내 조합에 그 채택을 강권하는 예산회계규정에 의하면 “부득이한 사유로 회계연도 개시 전 까지 당해연도 예산이 성립되지 아니한 때에는 전년도 동기간 예산에 준하여 집행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문제는 서울시 예산회계규정에 “부득이한 사유”라는 사족이 달려 있다는 점이다. 그 사족 하나 때문에 준예산 활용의 문제가 ‘부득이한 사유’의 해석론으로 비화될 소지가 다분하다.


본질적으로 ‘준예산’은 예산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각종 단체나 조직의 ‘객관적 예산공백’ 상황을 대비함으로써 단체나 조직의 활동 마비를 방지하는데 주안점이 있다. 


그럼에도 ‘회계연도 종료 전까지 예산을 수립하지 못할 만한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지’를 가리는데 방점을 둔다면 부득이한 사정이 없을 시 준예산 활용이 곤란해져 예산공백 상태로 몰리게 된다.


준예산의 적극적 활용을 저해할 ‘부득이한 사유’라는 사족을 떼어내어야 할 진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일규 변호사 / 법무법인 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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