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 = 홍영주 기자 ]
[ 그래픽 = 홍영주 기자 ]

박원순 시장이 세운재정비촉진구역 내 을지면옥과 양미옥 등 노포(老鋪) 보존을 골자로 재개발 전면 재검토 방침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 중단, 정상화를 둘러싼 주민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재개발 중단의 핵심이 된 노포.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사전에서는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포로 규정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만약 창업한 지 30년을 넘긴 가게가 2대 이상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면 노포일까요. 여기에 장인정신이 깃든 한 가지 음식을 수십 년 째 제공하고 있어야 한다는 부수적인 조건도 충족해야 할까요. 혹은 지은 지 30년 이상 된 오래된 건물에서의 영업 연속성이 인정돼야만 노포로 볼 수 있는 걸까요. 반면 재개발로 인한 영업손실 보상이 이뤄지고, 신축 건물이 들어선 후 재입점을 통해 영업을 재개한다면 노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노포로 볼 수 있는 판단 기준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박 시장은 지난 2015년 서울시 역사도심기본계획 보고서에 을지면옥 등이 생활유산으로 기록됐다는 점을 근거로만 노포들에 대한 보존 방침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서울시에서는 역사도심기본계획에서의 생활유산 지정 기준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실장은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에서 생활유산 지정 기준에 대해 2015년 만들어진 역사도심기본계획만을 강조했습니다. 또 다른 서울시 담당 공무원은 서울 4대문 내 시민들의 정서가 녹아 있는 오래된 건물과 음식점들을 보존하자는 취지로 생활유산을 지정했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건물’, ‘오래된 음식점’이라는 기준이 생활유산 지정의 근거라는 서울시 논리는 부족해 보입니다. 세운상가 인근 안성집의 경우 을지면옥보다 약 28년 먼저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생활유산으로는 을지면옥만 지정됐고, 안성집은 제외됐습니다. 서울시의 노포 기준이 ‘시민 정서가 녹아 있는 오래된 음식점’이라면 안성집부터 노포로 지정됐어야 합니다. 안성집이 오래되기는 했지만, 시민 정서가 녹아있지 않다는 뜻일까요. 명확한 기준 없이 단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노포를 지정하다보니 수많은 의문점과 모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실 서울시의 역사도심기본계획에서 기록된 생활유산은 역사학자가 포함된 공식 협의체나 위원회에서 심도 있게 결정한 사안이 아닙니다. 외부 용역으로 만들어진 연구기관과 민간 건축사사무소들이 참여해 생활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게 전부입니다.


박 시장의 노포 보존 방침이 후세에 오래된 건물,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음식 맛을 물려주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다만, 보존을 위해 백년대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재개발 등 도시계획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면 명확한 기준을 적립하는 등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입니다. 같은 발음이지만 다른 한자를 쓰는 노포(露布)의 또 다른 사전적 의미로는 일반에게 널리 퍼뜨린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박 시장의 재개발 재검토가 진정 노포(老鋪) 보존에 중점을 둔 것인지, 보존 중심의 정치적 업적을 노포(露布)하기 위한 것인지 의문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혁기 기자lee@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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