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자들이 제아무리 공공의 색채를 덧칠해본들 정비사업의 본질은 ‘사익의 추구’다. 수백·수천의 소유자들이 토지나 건축물을 던져 넣는 사업이니 사적 이윤추구의 원리가 그 어떤 사업보다 진지하고 강력하게 작동하리라는 것쯤 쉬이 짐작이 된다. 정비사업의 핵심 동기가 ‘사적 이윤추구’에 있으니 사업의 결과물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의 과제도 필히 뒤따른다.


조합이 사업시행자로 나서긴 하지만 효율성을 위한 한시적 수단일 뿐 수익의 궁극적 귀속주체는 개별 조합원이기에 공정한 분배기준이 필수적이다. 주식회사라면 ‘보유주식 수’라는 확고한 분배기준이 정립되어 있지만 정비사업의 분배기준은 법령상 그리 명확하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입법자가 정비사업의 분배기준에 관해 완전히 침묵한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시행규칙 별표 조합설립동의서 양식에 따르면 비용의 분담은 “종전자산의 가치 비율”, 신축건축물 구분소유권의 귀속은 “조합원 신청 우선, 경합 시 종전자산 가격”에 의한다. 물론 예시에 불과하여 규범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분배에 관한 기준을 조합설립 단계부터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에 따라 정비사업에 소요되는 비용이나 취득하는 수익의 분배는 “종전자산가치 비율”, 신축건축물 소유권의 분배는 “조합원 신청을 우선하되 경합 시 종전자산가치 순서”라는 일반적 기준이 통용되고 있다.


여기서 문제. 신축건축물 소유권의 분배에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는 “신청 우선, 경합 시 종전자산가치 순서”라는 기준과 다른 분배기준을 설정해도 될까. 예를 들어 두 단지가 하나의 정비구역으로 묶여져 단일한 조합을 설립하면서 조합설립동의서에 “분양대상 건축물을 대지지분비율에 의해 각 단지에 먼저 배분한 뒤, 단지별로 ‘신청우선, 경합 시 종전자산가치’라는 기준을 적용”하도록 기재한다면 그 분배기준은 유효할까.


이런 질문에 곧바로 관리처분기준에 관한 도시정비법령이나 정비조례를 떠올렸다면 문제해결 방향을 바르게 잡은 것이다. 도시정비법령이나 정비조례는 조합설립동의서 양식에 구현된 분배기준과 동일하게 “신청 우선, 경합시 종전자산가치 순서”라는 기준을 정립해 두고 있다. 만약 단지별 배분을 우선한다면 경우에 따라 종전자산가치가 더 큰 조합원이 순위에서 밀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는 ‘경합시 종전자산가치 순서’라는 법령의 기준과 달라 무효라는 법리전개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법리전개도 사업유형 별로 다르다는 점을 유의하여야 한다. 구분소유권 귀속에 관한 도시정비법령과 정비조례 기준은 상대적으로 공익적 색채가 짙은 ‘재개발과 주거환경개선사업’에 관한 것이고, 재건축에 관하여는 조합설립동의서 양식의 예시 외에 구체적 분배기준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건축사업을 위한 조합설립동의서에서 ‘종전자산가치 순서’보다 ‘단지별 배분’을 우선하는 내용으로 소유권 분배기준을 정하더라도 법령위반의 이슈는 발생하지 않고 다만 조합설립동의서 양식의 예시문구를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상의 논란만 남는 셈이다. 


그러나 재건축사업이라고 모든 분배기준이 무제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종전 자산에 관한 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균형있게 배분하여야 한다”는 도시정비법 제76조의 추상적 대원칙은 반드시 준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두 개 단지가 모여 하나의 재건축조합을 설립함에 있어 단지별 대지지분비율을 종전자산가치에 우선하는 소유권 분배기준으로 삼는 것은 종전자산 이용 상황의 구체적 특성을 고려한 것이어서 도시정비법상 ‘합리적‧균형적 배분’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기에 허용되고 유효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박일규 변호사 / 법무법인 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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