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고에서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과 토지보상법에 협의절차가 이원적으로 규정되었지만 실무상 토지보상법상 협의절차만 중시되어 재결신청 시기가 늦추어졌었다는 것, 대법원 판결이 도시정비법상 정비사업에는 토지보상법상 협의절차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다는 것, 그럼에도 지방토지수용위원회는 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보상협의를 위한 감정평가 관련서류등 토지보상법상 협의자료를 ‘지금도’ 요구하고 있다는 것, 도시정비법상 협의절차보다 토지보상법상 협의절차를 중시하는 지토위의 관행은 대법원 판결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 놀랍게도 일부 재판부는 지토위를 편들어 성실하게 협의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시정비법상 현금청산기간이 만료하였음에도 조합에 협의절차 진행을 강요하는 판단을 하고있다는 것, 토지보상법은 재결신청청구나 재결신청이나 모두 “협의가 성립되지 아니하였을 때”를 동일한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협의’는 ‘상호적’ 개념이어서 각 당사자에 따라 성립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없다는 것 등을 살펴보았다. 


일부 판결의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이지점에서 비롯된다. 지토위의 위법한 관행 탓에 불필요한 협의절차를 거치느라 수개월을 허비한 조합들은 궁극적으로 부당하게 증가한 가산금을 다투기 위해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때 누구보다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따라야 할 사실심 재판부가 뜻밖의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협의절차를 게을리한 조합을 응징하기 위해서라면 ‘협의가능성’이라는 법률요건을 각 협의당사자 별로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는 논리인데 이정도면 차라리 법해석이 아니라 입법행위로 평가해도 손색이 없다. 


어떤 해석이 올바른 것일까? 최소한 ‘협의가능성’이라는 상호적 개념의 법률요건을 청산자와 조합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건전한 상식을 외면해선 곤란하다. 조합에 불가능한 협의는 청산자에게도 불가능한 것이고, 청산자에게 가능한 협의는 조합에도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청산자의 조속재결신청청구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려면 군소리없이 조합의 수용재결 신청을 받아들여야 한다. 반대로 조합의 수용재결 신청을 물리치려면 청산자의 재결신청청구의 효력도 깔끔히 부인하여야 한다. 


이 간단한 상식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대법원은 어떨까? 여기에 그 입장을 넉넉히 추측해 볼 수 있는 대표적 판결이 하나 있다.


“협의가 성립하지 아니하였을 때에는 협의절차를 거쳤으나 협의가 성립하지 아니한 경우는 물론, 토지소유자 등이 보상을 요구하였는데도 사업시행자가 이를 제외한 채 협의를 하지 않아 결국 협의가 성립하지 않은 경우도 포함된다” (대법원 2011두2309).


위 판결 어디에 사업시행자의 성의없음과 게으름을 탓하는 표현이 있는가. 반복해 읽으며 그 의미를 수십번 곱씹어 봐도 협의의 성립과 불성립은 협의당사자 모두에 평행하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명쾌한 상식뿐, 요령부득의 궤변적 언사는 단 한마디도 없다. 


나아가 도시정비법에는 버젓이 ‘현금청산기간’이란 것이 있다. 청산자와 조합이 지지고 볶든 입을 닫고 온전히 침묵하든 결국 그 기간이 만료되면 협의는 불성립으로 간주하겠다는 입법자의 의사가 더 이상 뚜렷할 수 없다(개정법률은 더욱 더!). 고도화된 상식은 지키는 것도 회복하는 것도 지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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